일본 동북부 지역에서 발생한 대지진과 쓰나미 피해에 대한 한국민의 따뜻한 동정과 지원을 바라보는 한국 정부에게서 불안감이 감지된다. 엄청난 재난 속에서도 진행된 일본의 중학교 역사교과서 검정 결과가 오늘 발표되면, 한껏 고양된 한일 관계가 다시 곤두박질할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이웃 나라의 참사에 우리 국민이 보여준 지원이 기대 이상이었던 만큼 왜곡 교과서에 대한 실망 또한 커서 한일 관계가 거센 역풍을 맞을 수 있다.
대지진 동정 분위기에 역풍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논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올해는 2008년 개정된 교육기본법과 학습지도요령 등에 따라 새로 쓴 교과서가 검정 대상이다. 독도 문제 등을 어떻게 기술할 지 어느 때보다 관심거리다. 이번에 검정을 신청한 교과서는 우익단체'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만든 것이어서 역사왜곡 가능성은 더욱 크다.
이에 비춰 우리 정부의 우려는 대체로 합당한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정부가 간과하는 측면도 있다. 우리 국민의 성숙한 한일 관계 인식을 믿는 것이 필요하다. 일본의 참사에 보여준 순수한 동정과 지원은 과거 일본의 행위와 역사 왜곡을 잊거나 용인한 결과가 아니다. 매주 수요일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항의집회를 계속해온 위안부 할머니는 "죄가 미운 거지, 사람이 미운 것은 아니다"라고 일본 성원에 동참한 이유를 설명했다.
일본 정부가 한국 국민이 보여준 뜨거운 인류애와 성의를 고려해 검정 결과 발표를 미룬다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 나름대로 정해진 일정과 절차를 바꾸는 것을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그렇다면 우리로서는 두 가지 문제를 각기 다른 차원에서 다루는 의연하고 성숙한 자세를 보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재난구호 지원과 역사교과서 대응을 분리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을 우리 국민도 지혜롭게 수용하기를 바란다.
한국 국민의 따뜻한 성원에 감동한다던 일본 정부와 사회가 영토 문제에 편협한 태도를 바꾸지 않는 것은 딱한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우리도 그들의 불행을 동정하던 표정을 갑자기 바꿔 거칠게 대응하는 것은 여러모로 바람직하지 않다. 오랜 갈등 요인이 다시 불거진 것에 새삼 격하게 반응한다면, 그들의 재난에 동정과 성의를 베푼 우리의 진정성을 스스로 해칠 수 있다. 국제사회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중국이 급성장하고 있는 동북아시아에서 한일 관계는 결코 소홀히 여길 수 없다. 특히 모든 일에 민족 감정을 앞세워서는 우리의 국익에 긴요한 양국관계를 미래 지향적으로 올바로 이끌 수 없다. 일본의 역사 왜곡과 그릇된 독도 영유권 주장에는 단호하게 대처해야 하지만, 그 것이 양국 관계를 좌우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 사회가 이런 사리를 잘 헤아린다면, 정부의 입장과 고민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일본도 성숙한 이웃 되길
인터넷과 같은 과학기술의 발달은 올바른 민주주의의 실행을 오히려 어렵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 포퓰리즘의 작동을 용이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소수의 불만과 강경 목소리가 전부인 것처럼 들리는 경우도 흔하다. 그러나 정부는 성숙한 사회, 조용한 다수의 굳은 심지를 믿고 너른 안목으로 큰 틀의 국익을 좇아야 한다. 정부와 국민이 함께 더욱 의연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일본의 진정한 반성과 변화를 앞당기는 길이라고 믿는다. 일본 역시 이번 참사를 계기로 보다 성숙한 이웃이 되기를 바란다.
이면우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