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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수녀 산문집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 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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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수녀 산문집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 펴내

입력
2011.03.29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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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수녀가 새 책 (샘터 발행)를 냈다. 이후 5년 만에 묶어낸 산문집이다. 2008년 암수술을 받고 몸 속의 병과 함께 살아가면서, 지인들의 잇단 죽음을 목도하면서 가슴에 어린 생의 무늬를 담백한 언어로 표현했다. 수도자이기 전에 여린 인간으로 겪어야 하는 상실감과 관조를 나지막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서문을 대신해 책의 앞머리에 실린 건 올해 초 세상을 떠난 소설가 박완서씨의 편지다. 지난해 4월 16일자 소인이 찍혀 있다. 박씨가 담낭암 진단을 받기 다섯 달 전이다.

“사랑하는 이해인 수녀님/ 그리던 고향에 다녀가는 것처럼 마음의 평화를 얻어 가지고 돌아갑니다/ 내년 이맘때도 이곳 식구들과 짜장면을 같이 먹을 수 있기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나보다는 오래 살아 주십시오/ 주여, 제 욕심을 불쌍히 여기소서.”

책은 여섯 개의 장으로 돼 있다. 이해인 수녀의 일상과 인연을 엿볼 수 있는 편지와 일기, 기도문들이다. 그니의 아픔과 눈물, 다정한 미소, 명랑한 웃음이 순하디 순한 문장 속에서 명징하게 떠오른다. 그윽하게 퍼지는 만종(晩鐘)의 여운 같다.

“꽃이 지고 나면/ 비로소 잎사귀가 보인다/ 잎 가장자리 모양도/ 잎맥의 모양도/ 꽃보다 아름다운/ 시가 되어 살아온다// 둥글게 길쭉하게/ 뾰족하게 넓적하게/ 내가 사귄 사람들의/ 서로 다른 얼굴이/ 나무 위에서 웃고 있다// 마주나기잎/ 어긋나기잎/ 돌려나기잎/ 무리지어나기잎// 내가 사랑한 사람들의/ 서로 다른 운명이/ 삶의 나무 위에 무성하다.”(‘잎사귀 명상’ 전문)

3장 ‘사계절의 정원_수도원 일기’는 지난해 한 해 동안의 일상을 기록한 일기다. 치료의 고통을 견디는 힘든 시간들의 기록, 인사발령이 나 떠나거나 죽어 이별한 이들에 대한 연민과 슬픔, 하루를 시작하고 마치는 일의 소소한 행복감을 그득 담고 있다. 흐르는 시간에 대한 안타까움과 순명의 태도를 솔직하게 말하고 있다.

“성탄 편지도 쓰고, 객실의 손님들에게 인사도 하고… 골목길이나 우체국에서 동네 사람들이 주고받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기도 하고… 아무튼 자기 안에서 밖으로 빠져나오려는 노력을 스스로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2010년 12월 1일 일기)

6장 ‘그리움은 꽃이 되어_추모일기’에는 우리시대를 살다 간 어른들에 대한 추모 글을 모았다. 수필가 피천득, 김수환 추기경, 서양화가 김점선, 장영희 교수, 김형모 십대들의쪽지 발행인, 법정 스님, 이태석 신부 등에게 바치는 글들이다. 슬픔을 애써 감추고 있어 뭉클함이 더 크다.

“수단의 가난한 이들을 위해, 톤즈의 해맑은 청소년들을 위해 현지인과 똑같이 적응하려 애쓰며 부서지고 부서진 그 사랑은… 이기적으로 사는 삶은 더 이상 바람직한 삶이 아니라고 침묵으로 강하게 소리치고 계시네요. 불러도 대답 없으신 이태석 신부님, 아아 우리 신부님!”(‘이태석 신부 선종 100일 후에’에서)

마지막에 수록된 시 ‘여정’은 투병의 고통 속에서도 놓지 않은 삶에 대한 기쁨과 감사, 그리고 사라져가는 모든 것들에 대한 따뜻한 연민의 목소리다. “태어나면서부터 나는 순례자… 세상 여정 마치기 전 꼭 한 번 말하리라/ 길 위에서 만났던 모든 이에게/ 가만히 손 흔들며 말하리라// 많이 울어야 할 순간들도/ 사랑으로 받아/ 행복했다고/ 고마웠다고/ 아름다웠다고.”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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