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도 너무 다르다. 아무리 한국과 미국 관객은 다르다 해도 결과가 너무 의외다.
올해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남녀조연상을 휩쓴 '파이터'(10일 개봉)가 27일까지 모은 관객은 13만4,382명(영화진흥위원회 집계)이다. 많다면 많은 관객이지만 오스카 효과를 톡톡히 누리는 영화들 성적에 비하면 한 없이 초라하다.
나탈리 포트만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긴 '블랙 스완'의 흥행 기세는 거침 없다. 개봉(2월24일) 한 달이 지났지만 지난 주말 5만5,908명을 모으며 박스오피스 7위에 올랐다. '블랙 스완'을 본 관객은 154만5,964명이다. 오스카 효과를 제대로 봤다는 분석이 쏟아진다.
작품상과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 4개 부문을 거머쥔 '킹스 스피치'의 흥행도 예사롭지 않다. 개봉(17일) 첫 주 '월드 인베이전'에 밀려 주말 박스오피스 2위에 머물렀으나 뒷심이 무섭다. 지난 주말 17만3,231명이 관람한 덕에 흥행 1위에 올라섰다. 장기 흥행의 청신호인 일명 '개싸라기'(갈수록 흥행이 잘되는 것을 지칭하는 충무로 속어) 현상이 드물게 일어났다. 누적 관객수는 51만5,160명. 손익분기점을 벌써 넘어선 알토란 같은 흥행 성과다. 지난 주말 고작 2,036명을 모은 '파이터' 입장에선 씁쓸하기만 한 현실이다.
'파이터'의 북미시장 흥행 성적은 '블랙 스완'이나 '킹스 스피치'와 비교해 보면 별반 다르지 않다. 미국 흥행조사기관 박스오피스모조에 따르면 27일 기준 9,357만1,000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제작비(2,500만달러)의 4배에 가까운 '잭팟'을 터트린 셈이다.
'파이터'의 국내 흥행 부진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입에 오른다. 우선 제목 때문에 지나치게 남성적인 영화로 인식된 점이 장애물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가족 드라마로서의 훈훈한 감동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비인기종목으로 전락한 복싱의 현주소가 반영됐다는 의견도 나온다.
아카데미 남녀조연상 수상으론 힘에 부쳤다. 작품상이나 남녀주연상에 비해 상 이름의 묵직함에서 밀렸다는 분석이다. 오스카도 오스카 나름, 남녀조연상이 주연상 하나 이겨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올림픽 금메달과 일등만 기억한다는 비아냥이 나오는 사회이니 영화라고 별 수 있으랴.
한국 흥행 성적을 안다면 남우조연상을 받은 크리스천 베일이 많이도 억울할 듯하다. 그는 '파이터'의 상영시간(116분) 중 63%(73분26초)의 장면에 등장한다. 주연이라 해도 무리 없을 분량이다. 그래도 '더 브레이브'의 헤일리 스테인펠드의 억울함에 비할까. 110분짜리 영화에 99분(90%)이나 얼굴을 보이고선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던 그는 빈손으로 귀가했다.
wender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