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복제약의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조작에 제약사들의 관여가 있었다는 진술을 받고도 제대로 수사를 하지 않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추론된다.
우선 검찰이 수사과정에서 막강한 제약사들의 로비에 굴복했을 가능성이다. 그러나 이 부분은 명확히 확인할 수 없는 의혹이다. 주임 검사였던 최모 검사는 수사의 적절성을 설명하며 "제약회사가 조작을 의뢰하면서 시험기관에 뒷돈을 줬는지를 확인해봤지만 나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시험기관이 을(乙)의 입장이었고, 제약회사가 적정한 시험비용도 제대로 주지 않았던 상황에서 제약회사의 면책 이유가 되기는 어렵다.
두 번째는 검찰이 자체 인지 수사한 사건이 아니고, 94개 제약사가 걸린 방대한 사건이어서 애초부터 수사 대상을 시험기관에 한정하고 가지치기를 했을 가능성이다. 실제 서울중앙지검 형사부의 경우 특수부 등과 달리 새로운 혐의를 찾아 수사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경찰이나 각종 조사기관에서 넘어오는 사건을 마무리하기에 바쁘다. 최 검사는 수사가 부실했던 것 아니냐는 질문에 "제약회사들이 너무 많았다"고 말했다가, 수사여력이 부족했다는 뜻인지를 재차 묻자 "그런 뜻은 아니다"고 얼버무렸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서건 검찰이 직무유기를 했다는 비난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검찰수사가 부실하다 보니 법원 판결도 제약사에 유리한 쪽으로만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제약사들이 시험 조작에 관여한 정황이 뚜렷한 데도 면죄부를 받으면서 제약사에 지급한 건강보험 약제비를 회수하지 못하고, 제약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자인 시험기관 연구원들에게만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배상판결이 일부나마 내려지고 있다.
시험기관 L사의 전 생동성 시험책임자였던 A씨는 제약회사의 관여를 주장하며 부당함을 호소하고 있다. A씨는 지난해 9월 재판부에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제약회사들은 생동성 시험의 전문성을 강조함으로써 자신들은 생동성 시험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고 관여사실을 부인하고 있다"며 "그러나 제약회사에는 약사를 비롯한 상당수의 제약 전문가들이 근무하고 있고 생동성 시험의 방법과 시험절차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제약회사 직원들은 생동성 시험을 맡긴 연구기관에 수사로 드나들며 진행상황을 파악했다"고 검찰에서 진술한 내용을 다시 강조했다.
A씨는 또 "제약회사들은 생동성 시험 1건당 약 5,000만원에 불과한 금액을 비용으로 지급했는데, 시험이 원칙에 따라 제대로 수행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라는 점을 제약회사들 스스로 더 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제약회사들이 생동성 시험조작에 대해 묵시적 또는 간접적 압박을 가했으며, 이는 이미 형사사건에서 인정된 사실"이라고 말했다.
A씨는 '묵시적, 간접적'압박이라고 했지만 사건의 내막을 알게 되면 직접적 압박과 큰 차이가 없다. 이번 사건으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은 피고인들의 판결문에 따르면 "조작해라"라고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은 금기시돼 있었다고 한다. 시험기관 내부 관계자들조차 명시적으로 '시험자료의 조작'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고, 제약회사와 거래관계의 단절 등을 이야기하면서 (오리지널약과) 비(非)동등 결과가 나오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들을 주고받았다.
또 유일하게 제약사 직원이 기소된 S제약 사건 판결문에는 "당시 직접적으로 시험데이터를 조작하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알아서 잘 해결하라'라고 간접적으로 지시했고, 분석연구원들은 '맞추래, 맞춰야지, 내가 머 힘이 있느냐'라며 조작을 했다"고 돼있다. 또 "제약회사에 잘 해주겠다고 약속을 하고 계약수주를 하였으니 혹 분석에 문제가 있더라도 잘 해주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수시로 오갔다.
최 검사는 "묵시적 압박으로 법원에서 제약사들의 유죄판결을 이끌어 내기는 어렵다"고 말했지만, 이미 나온 형사 판결에 따르면 충분히 인정되고 있는 셈이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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