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 동남권 신공항 경계 경보가 울렸다. 정부가 30일 동남권 신공항 건설방안과 관련, '신공항 건설 백지화, 김해공항 확장 검토'쪽으로 결론을 낼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영남권 의원들이 강하게 반발할 태세여서 향후 정국에 신공항 후폭풍이 몰아 닥칠 전망이다.
그간 동남권 신공항 입지 문제는 경남 밀양을 원하는 대구∙경북(TK), 경남 일부 의원들과 부산 가덕도를 지지하는 부산 의원들이 맞서 첨예한 갈등을 빚어온 사안이다. 백지화는 결국 어느 쪽 손도 들어주지 않겠다는 얘기다. 하지만 '김해공항 확장 검토'를 덧붙임으로써 "부산∙경남(PK)쪽은 본전을 챙기는 방안"이란 평가도 나온다. 그래서 가깝게는 4ㆍ27 재보선, 멀리는 내년 총선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한 여권 인사는 28일 "내년 총선 때 TK에서 신공항 때문에 한나라당 후보들이 줄줄이 떨어질 수 있지만 적어도 민주당 후보는 당선되지 않을 것"이라며 "하지만 PK에선 한나라당 후보가 떨어지면 바로 민주당이 치고 들어온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백지화 방안이 알려진 뒤 대구와 부산지역 여당 의원들이 보여준 반응을 보면 온도 차가 컸다. 대구 의원들은 이날 국회에서 긴급 모임을 가진 뒤 "동남권 신공항을 이제 와서 백지화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결사 반대'를 선언했다. 의원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격앙돼 있었다. 한 의원은 "이 대통령에 대한 국민 불신이 극에 달하고 엄청난 분노가 표출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의원은 "다음 총선에서 한나라당 후보들은 대구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김범일 대구시장 등 TK지역 광역단체장들도 기자회견을 갖고 강하게 반발했다.
반면 부산 지역 한나라당 의원들은 대체로 담담했다. 한 의원은 "백지화가 발표되면 당장은 공약을 지키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판이 일겠지만 조만간 잦아들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또 다른 의원은 "이것 말고 다른 방안이 있겠느냐"고 말했다.
PK 민심은 잦아든다지만 TK 민심은 당분간 격앙될 수밖에 없다. 다음 총선을 생각해 이 대통령과 각을 세우려는 TK 의원들이 나오면서 민심은 더욱 흉흉해질 수 있다. 한 TK 의원은"실제 백지화가 결정되면 한나라당을 탈당하거나 이 대통령에게 탈당을 요구하는 의원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TK가 현정권의 주요 지지 기반이란 점에서 TK 지역의 민심 이반은 집권 후반기를 맞은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차질을 가져올 수 있다. "대통령 레임덕이 당겨질 수 있다"는 얘기도 있다.
문제는 신공항이 이번 발표로 매듭될 사안이 아니라는 점이다. 민심이 백지화를 수용하지 못하면 내년 총선과 대선 국면에서 영남권 신공항 건설 공약은 재등장할 수밖에 없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신공항에 대한 차기 주자들의 셈법이 복잡해 지고, 영남 지역은 그때까지 신공항 문제로 몸살을 앓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동훈기자 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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