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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불광 대장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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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불광 대장간

입력
2011.03.28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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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대장간이 몇 곳 남아 있다. 은평구 시외버스터미널 뒤 불광 대장간도 그중 하나다. 두 사람이 겨우 움직일 만한 조그만 작업장에서 박경원(74)씨와 아들 상범(43)씨가 빨갛게 달구어진 시우쇠를 모루 위에 올려놓고 메질을 한다. 장단이 어찌나 잘 맞는지 골목길에 울리는 망치질 소리가 신명난다. 두드려서 모양을 만들고 '불광'이라는 이 집 도장을 꽝하고 찍어 넣으면 물건이 완성된다. 아버지는 13세부터 대장간 일을 했으니 경력 60년, 제대하고 아버지를 돕던 아들도 벌써 20년째다.

망치와 도끼를 만들고 호미 낫 쇠스랑 같은 농기구도 만든다. 서울에서 요즘 이런 물건을 누가 쓰나 싶지만 동네 아주머니가 화단 손질한다고 호미를 사가고 중년 남자는 장작을 패려는지 튼실한 도끼를 사간다. 불광 대장간은 단조(鍛造) 작업을 기계로 하지 않고 사람이 한다. 손으로 만들어야 사람 손에 꼭 맞는 연장을 만들 수 있다. 단련한 연장은 기계로 찍어낸 공구보다 수명도 훨씬 길다. 그래서 물건의 진가를 알아보는 석공이나 목수들이 더 찾는다.

'또당 또당'망치질 끝에 빨간 쇳덩이가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조각가의 눈에는 신기하기만 하다. 가스통 바슐라르는 물 불 공기 흙(쇠)의 4원소를 다루는 대장장이를 반신(半神)에 비유하며 대장간 작업을 '완전한 일'이라고 하였다. 그의 서정적인 글들은 20여 년 전 초년의 조각가였던 나를 한 동안 철조 작업에 깊이 빠져들게 하였다.

바슐라르에 의하면 뜨거운 쇠를 차가운 물에 담그는 것은 불의 기운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보전하는 방법이다. 그는 담금질을"냉수로 불이라는 야수를 강철의 감옥에 가둔다"고 했다. 전설적인 대장장이가 만든 칼에는 강한 불기운이 서려 있다. 영웅 지그프리트가 용의 심장을 찔렀던 명검 노퉁(Nothung)에 대해서 바그너는 "물속에 한줄기 불이 흐르며 소리를 내더니 격노가 스쳐갔다. 그것을 엄한 냉기가 지배한다"고 썼다. 검이 부딪칠 때 불꽃을 일으키는 것은 품고 있던 불을 쏟기 때문이다.

그러나 좋은 연장을 만들려면 4원소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전설적인 대장장이가 아닌 동네 대장장이도 단단한 쇠에 뜨거운 불과 더불어 혼 불을 집어넣어야만 좋은 연장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호미 한 자루에도 혼 불을 집어넣으려는 대장장이의 열정은 공장의 대량생산 방식과 다르다. 전동 기계로 금속을 재단하고 거푸집으로 찍어내는 방식으로는 물질에 영혼을 용해시킬 수 없다.

시대는 변했다. 현대인은 물 불 공기 흙이 아니라 공간 시간 물질 에너지라고 하는 새로운 4원소 시대에 살고 있다. 대장간은 사라지고 추억 거리가 된 세상에 영국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말을 되새긴다. 블레이크에 따르면 인간은 흙으로 빚어진 존재가 아니라 망치질로 쇠에서 불순물이 제거되듯 단련에 의해 연약하고 더러운 물질이 몸 밖으로 던져지며 만들어진 금속의 존재다. 시인 김광규는 그 의미를 이렇게 노래한다. "풀무질로 이글거리는 불 속에/시우쇠처럼 나를 달구고/모루 위에서 벼리고/숫돌에 갈아/시퍼런 무쇠 낫으로 바꾸고 싶다."

대량생산 시대에는 사람도 플라스틱 물건처럼 마구 만들어 지는 것일까? 서울에 몇 곳 남지 않은 재래식 대장간의 벌건 화덕을 바라보며 불에 달구어지고 망치질로 만들어진 인간을 상상해 본다. 메질로 단련된 인격체, "땀 흘리며 두들겨 하나씩 만들어 낸 꼬부랑 호미"같은 사람이 그립다.

전강옥 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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