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세대의 꿈과 호흡하고 연대하는, 살아 있는 리얼리즘을 추구하겠습니다.”
실천문학사 신임대표에 오른 손택수(41) 시인은 인터뷰 내내 두 가지를 되풀이 강조했다. 리얼리즘의 되살림과 젊은 세대들의 꿈들과 연대하기. 이는 비단 한 출판사만의 소명은 아니다. 외따로 놀며 자족하거나 협량한 판에서 아둥바둥하는 지금 우리 문학이 곱씹어야할 과제가 아닌가.
문학판의 좌표를 긋고자 하는 이 말이 신임 대표의 인사치레나 허세로 들리지 않는 것은 실천문학사의 무게감 때문일 터. 1980년 무크지로 출범한 후 강제폐간, 세무사찰, 전ㆍ현직 대표들의 구속 등 시대적 역경을 겪은 실천문학사는 2000년대 들어 거세진 출판상업주의 물결 속에서 때로 기신기신하면서도 꿋꿋이 걸어왔다. 고집스럽게 지켜 왔던 그 정체성을 민중문학, 진보문학, 리얼리즘이라 하겠지만 가난의 정신이나 변방의 정신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한국 문단의 한 역사가 어린 그 바통을 손 대표가 이어 받았다. 25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1997년부터 대표를 맡았던 소설가 김영현씨가 물러나고, 손 시인이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윤지관 덕성여대 교수를 제외한 최두석 방현석 김재용 등의 기존 이사는 물러나고 그 자리에 이은봉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이 선임됐고, 나머지 두 자리는 젊은 문인들로 채워질 계획이다.
14년 만에 이뤄진 세대교체다. 실천문학사는 111명의 문인 소액주주로 이뤄진, 개인 소유가 아닌 문인 공동의 출판사다. 그런 만큼 이제 젊은 세대가 스스로의 문학 담론을 펼쳐 나가도록 길을 트겠다는 것이다. 손 대표도 그런 뜻에 따라 “젊은 문인들의 놀이터로 내놓겠다”고 말했다. “지금 문학 판은 젊은 세대들이 자신들의 담론을 내세우기 힘든 구조예요. 예전 세대들은 출판자본이 있었으나 지금 세대는 자본이 없어요. 그러니 문학상에 줄을 서야 되고 출판사 중심의 문단 헤게모니에 눈치를 봐야 되죠. 이번 세대 교체를 통해 새 세대들이 주도적으로 자신들의 꿈을 위해 꿈틀댈 수 있는 장으로 만들겠습니다.”실천문학사는 젊은 문인들을 새 주주로 영입하고, 계간지 실천문학 편집위원도 새 문인들도 대폭 교체할 계획이다.
문제는 젊은 문인들이 리얼리즘이나 실천문학이란 채널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냐는 점이다. 리얼리즘이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나 맞서던, 지금은 낡은 그릇으로 여기는 풍토도 없지 않다. 손 대표는 그러나“2009년 용산 참사를 겪으면서 젊은 작가들이 69작가 선언을 하는 등 변화의 꿈들을 보였는데 잘 조직화가 안 됐을 뿐이다”며 지금 세대에게서도 리얼리즘 정신의 가능성을 보고 있다고 했다. 그는“우리도 정체된 면이 있었다”며 “리얼리즘은 현장의 꿈틀거리는 힘들과 늘 함께 하는 것인데 그것을 부단히 되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9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손 대표는 등 세 권의 시집을 내며 신동엽창작상 이수문학상 오늘의젊은예술가상 등을 수상했다. 난해한 언어적 실험에 매진하는 젊은 시인들 한 켠에서 그는 현실과의 접점을 잃지 않으며 농경문화에 뿌리를 둔 서정성을 살려 내 한국 서정시의 본령을 잇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가 실천문학과 인연을 맺은 것은 2004년 실천문학 시집 기획위원을 맡으면서. “선배를 만나면서 선배들의 힘을 봤어요. 문단의 헤게모니를 장악하려는 야망을 가진 게 아니라 단지 실천문학을 통해 자신들의 꿈이 이어지기를 바랬어요. 또 민주적 절차를 통해 합의를 해 나가는 모습들을 보면서 희망을 걸게 됐습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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