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분당서울대병원에서 몸무게가 540g에 불과한 초저체중아가 태어났다. 아기 아빠를 비롯해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아기를 포기하겠다고 했지만, 임신중독증으로 어렵게 아기를 낳은 아기 엄마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신생아 중환자실로 옮겨진 갓난아기는 그 때부터 목숨을 건 사투를 시작했다. 24주 만에 태어나 신생아호흡곤란증후군을 앓고 있던 아기는 한치 앞도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었다. 김병일 분당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폐표면활성제를 투여하고, 인공호흡기 치료를 시작했다. 이어 아기가 스스로 호흡하기 시작하는 걸 확인한 김 교수는 72시간 만에 인공호흡기를 떼고, n-CPAP이라는 최신 장비로 코를 통해 양압을 불어 넣어 호흡을 도와주었다. 다행히 아기는 넉 달 뒤 건강하게 퇴원했다. 인공호흡기를 빨리 떼내 폐 손상을 줄인 덕분이었다.
폐 손상 줄여 미숙아 후유증 발생률 낮춰
김 교수는 신생아 만성 폐질환 치료 개척자다. 김 교수가 신생아학을 공부하던 1980년대만 해도 1,500g 미만의 초저체중 미숙아는 거의 살아 남지 못했다. 그러다가 1990년 초 폐표면활성제가 효과를 내기 시작하면서 급성 신생아호흡곤란증후군이 있는 미숙아들도 새 생명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조직이 발달하지 못한 폐에 인공호흡기를 한 달 이상 연결하다 보니, 폐가 손상돼 기관지폐이형성증이 생기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김 교수는 1993년 국내 최초로 기관지폐이형성증의 발생률을 발표하고, 동물 실험 모델을 만들어 병의 메커니즘을 연구했다. 특히 병을 예방하기 위해 적정 산소투여량의 기준을 세워 호평을 받았다. 지금도 그는 제자이자 학문적 동지인 최창원 교수와 함께 세계적인 업적을 쌓아가고 있다.
n-CPAP라는 장비를 국내에 처음 도입한 것도 그다. 위험할 때에만 잠깐 기도에 인공호흡기의 튜브를 넣고, 호흡이 안정됐을 때 바로 떼어낸 뒤 n-CPAP을 연결하면 기관지폐이형성증으로 신생아의 폐가 손상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이 폐질환에는 특별한 치료약이 없기 때문에 미리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서울대 어린이병원에서 10년 넘게 재직하다가 2003년 분당서울대병원으로 옮겨온 김 교수는 부임 후 곧바로 신생아중환자실에 심혈을 기울였다. 저체중아에게서 72시간 내에 인공호흡기를 떼내고 n-CPAP을 사용하도록 의료진을 훈련시켰다. 덕분에 분당서울대병원 신생아중환자실에서는 1,000g 미만 초저체중아라도 스스로 호흡을 할 수 있으면 72시간 내에 인공호흡기를 떼낸다. 보통은 출생 후 최소한 1주일 이상 인공호흡기를 부착한다. 이런 이유로 분당서울대병원에 입원한 미숙아의 생존율은 세계 1위다. 출생체중 1,500g 미만의 미숙아 생존율은 91%, 1,000g 미만은 85%(2009년 기준)로, 일본과 미국의 유수 병원과 비슷하다. 1,500g 미만 미숙아의 뇌성마비 발생률도 1.5%로 국내 최저 수준이다. ‘의학발달의 총합’으로 불리는 신생아학의 선구자, 김병일 교수에게 미숙아 치료에 관해 물어보았다.
-미숙아 치료에서 폐 질환 관리가 중요한 이유는.
“인간의 폐가 완전히 성숙하려면 생후 2년이 지나야 하는데, 미숙아나 저체중아는 폐가 미성숙해 스스로 호흡하기 어려워 인공호흡기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인공호흡기로 산소를 투여하다 보면 폐 손상이 불가피하다. 특히 신생아 만성폐질환인 기관지폐이형성증은 미숙아나 저체중아에서 사망과 합병증을 일으키는 주범이다. 또한 폐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면 뇌에 산소가 충분히 공급되지 않아 뇌가 손상될 우려가 있다.”
-특별한 치료법은 없나.
“폐는 한 번 손상되면 회복이 잘 안 되기 때문에 손상을 줄이는 게 최선이다. 신생아의 폐가 나빠지는 것은 출생 전 태반과 양막에 생긴 염증 때문이다. 출생 전후의 여러 요인으로 인해 아기의 폐가 손상되면서 기관지폐이형성증이 생기는 것이다. 이 질환의 치료제 개발이 신생아과의 가장 큰 이슈인데, 이 분야에서 우리 병원이 가장 앞섰다. 최창원 교수가 출생 전후로 폐 손상을 유발해 기관지폐이형성증을 앓는 동물 모델을 개발해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기도 했다.”
-미숙아 출산이 늘어나는 원인은.
“고령 출산이 가장 큰 원인이다. 일반적으로 20대 산모에 비해 30대와 40대 산모의 미숙아 출산율이 각각 2배, 5배 이상 높다. 산모의 나이가 많을수록 태반 기능이 약하고, 그만큼 감염될 위험도 높기 때문이다. 흡연과 성인병도 미숙아 출산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산모가 나이 많거나 고혈압과 당뇨병 같은 성인병을 앓고 있다면 조산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관리해야 한다.”
-미숙아는 치료 받아도 후유 장애가 남을 수 있다는데.
“미숙아는 여러 가지 질병을 복합적으로 앓는다. 심지어 10가지에 달하는 질병을 안고 집중치료실에 들어오는 신생아도 있지만 80~90%가 합병증 없이 퇴원한다. 뇌가 손상돼도 재활치료를 빨리 시작하면 회복도 그만큼 빠르다. 뇌가 손상된 아이는 집중치료실에 있을 때부터 걷기 위한 재활치료를 해야 한다. 그 덕분에 뇌성마비 환자가 많이 줄어들고 있다. 이밖에 우리 병원은 미숙아의 뇌파를 전문으로 진료하는 소아신경과를 비롯해, 소아소화기 및 영양과 소아내분비대사, 언어치료까지 다양한 분과의 의료진이 협진을 해 미숙아의 합병증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미숙아 치료시설이 부족한데.
“대한신생아학회는 신생아 집중 치료 시설이 850병상 정도 부족하다고 추산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조산을 할 경우 집중치료실을 갖춘 병원에 입원하기 위해 며칠씩 발을 동동 구르는 일도 허다하다. 보건복지부가 지방 신생아 치료 시설에 우선적으로 투자하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신생아 치료시설에 들어가지 못해 어린 생명을 잃는 경우가 적지 않다.”
-미숙아를 낳은 부모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은.
“10년 전만 해도 미숙아의 십중팔구는 목숨을 잃거나 합병증으로 고생을 해야 했다. 하지만 요즘은 치료만 잘 하면 아무 문제 없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 그만큼 신생아 분야 의술이 발달한 것이다. 무엇보다 부모가 의지를 가지고 의연하게 치료에 임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세상을 빛낸 위인 가운데 미숙아로 태어난 사람들이 많다는 걸 잊지 말자.”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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