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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민복의 시로 여는 아침] 마침표를 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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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민복의 시로 여는 아침] 마침표를 뽑다

입력
2011.03.28 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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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규

살아 있는 문장 끝에 박힌 마침표처럼

흔들거리는 개말뚝을 다시 고쳐 박자고 무심코 쑥 뽑았는데, 아뿔싸

잡을 새도 없이

어떤 넘치는 힘이 무거운 쇠사슬을 끌며

멀리 동구 밖으로 뛰쳐나가는 경쾌한 소리를 듣는다

일생을 단 한 줄로 요약한 단문 끝에 말뚝처럼 박힌 뒷산 무덤가 비석들

모조리 뽑아주면

죽음 너머 밝은 귀 서넛쯤 하던 일 멈추고 솔깃하겠다

저 소리, 돌아오지 않는 단순한 문장의 길고 먼 여운

● 말뚝에 매인 개를 본다. 유선과 무선의 차이일 뿐, 당신도 집이라는 말뚝에 묶여있다고 개가 나를 측은하게 바라다본다.

전파의 말뚝, 돈의 말뚝, 관계의 말뚝... 현실을 직시해보니 말뚝들로 연결된 쇠사슬에 내가 묶여있다. 아니, 말뚝에 더 견고하게 매이려고 발버둥치고 있고 혹시라도 말뚝에서 풀려나면 어쩌나 안달까지 하고 있는 형국이다.

태양과 공기와 물의 말뚝을 벗은 자도 비문의 말뚝에 매여 있다니, 살아 있는 자로서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를 위무도해보지만, 이 봄 쇠사슬이 너무 버겁다. 나무처럼 말뚝이 되어 말뚝에서 해방될 수 없다면, 잠시만이라도 구름과 새소리와 물빛과 아지랑이로 말뚝을 지우며, 쇠사슬 쩔렁거리며 동구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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