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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여성 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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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여성 배려

입력
2011.03.27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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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평등의 역사는 무척 짧다. 민주주의의 발상지인 영국에서도 19세기 말까지 남편이 아내를 파는 일이 공공연히 자행됐다. 토머스 하디의 소설 <캐스터브리지의 시장> 은 19세기 중반 잉글랜드 남서부 지역이 배경이다. 주인공 마이클 헨차드는 술에 취해 아내와 갓난 딸을 뱃사람에게 팔아 넘긴다. 뒤늦게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새 사람이 돼 시장으로 선출되지만,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기록을 보면 19세기 말까지 120년 간 영국에서 최소 300여 건의 아내 매매(wife sale)가 이뤄졌다.

■ 현대 여성들은 독립된 인격체로서 자아 실현과 주체적인 삶을 추구한다. 직업적 평등은 모든 영역에서 이뤄지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여성 대학생이 남학생보다 더 많다. 여성 정치인과 기업인들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고, 창업 여성의 수가 남성의 3배라는 통계도 있다.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정치ㆍ경제 영역에서 남성이 여성 상사에게 복종하는 것이 더 이상 부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시대가 됐다. 최근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지지하는 이유에 대해 '여성 대통령이 나올 때가 됐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바야흐로 남녀 평등의 최후 단계인 여성의 권력화가 진행 중이다.

■ 전통적인 성 역할이 급격히 무너지고 있지만, 남녀의 육체와 관련된 내밀한 문제로 넘어가면 사정은 달라진다. 미국에서는 여성의 40%가 성적으로 치근대는 남자 때문에 고통을 겪은 경험이 있다. 커플이었던 여성의 28%가 남성 파트너에게 폭행을 당했고, 여성의 50%가 적어도 한 번 이상 배우자나 연인에게 맞은 적이 있다. 남편 7명 중 1명은 가정에서 폭력을 행사한다. 여대생 4명 중 1명이 강간을 당하거나 당할 뻔한 경험이 있다. 대학 캠퍼스에서 발생한 강간 사건의 피해자 10명 중 9명은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에게 당했다.

■ 서울중앙지법이 여성 배석판사를 배려하는 매뉴얼을 부장판사들에게 배포했다고 한다. 올해 신임 판사 81명 중 여성이 53명일 만큼 여판사가 급증하자, 만일의 불미스러운 사태를 막기 위해서다. 헌데 여판사들 사이에선 "지나친 배려가 부담스럽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여판사를 남성과 동일한 '판사'로 대우하지 않고, 일정한 거리 두기로 상호 불신을 조장한다고 느끼는 모양이다. 남녀의 사회적 조건은 거의 동일해졌지만, 성이 남성의 권력 수단으로 작용하는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니 과도기적 통과의례로 여기면 될 성싶다. 성의 민주화는 현재진행형이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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