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삐익~삑" 인큐베이터 사투도 덧없이…
매년 2만 명에 가까운 신생아가 조산과 저체중에 의한 질병으로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 전체 출생아가 2009년 44만여 명인 것을 감안하면 20명 중 한 명 꼴이다. 노산(老産) 추세에 따라 그 숫자는 갈수록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저출산 시대에 신생아 건강이 지금처럼 방치된다면 출산 장려는 공허한 목소리일 뿐"이라고 말한다. 불안한 신생아 실태와 대책을 3회의 시리즈로 짚어본다.
"응급 상황입니다. 현진(가명)이 배가 갑자기 차오르는데 좀 와보세요! 선생님."
지난달 20일 새벽 1시 서울 노원구 인제대 상계백병원 신생아중환자실. 간호사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삐익~삑" 경고음과 함께 현진이의 배는 푸르스름해지며 풍선같이 부풀었다. 의료진은 황급히 항생제를 투여했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다. 현진이의 눈과 입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다. 경고음이 곧 사라졌다. 수혈을 하던 의료진은 말을 잃었다. 태어나자마자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숨을 이어가던 이 아이는 엄마 품에 한 번도 제대로 안겨보지 못했다.
신생아괴사성장염(감염으로 장에 구멍이 나는 병)을 앓고 있던 아이는 지난해 크리스마스 때 임신 27주 만에 태어났다. 무려 13주나 일찍 세상에 나왔고 몸무게는 1,000g이 채 되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현진이가 터무니없이 빨리 태어난 원인을 노산에서 찾았다. 나이 많은 산모는 갑자기 자궁 문이 열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건강에 아무런 이상이 없었던 산모 A씨는 아이를 밸 당시 38세였다. 현진이를 가슴에 묻은 아버지 이모(45ㆍ회사원)씨는 "5년 전 늦은 나이에 결혼한데다 맞벌이라 아이가 쉽게 들어서지 않았다. 어렵게 얻은 자식이라 기적이 일어날 거라 믿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 병원 신생아중환자실에는 조산아 5명을 포함한 신생아 6명이 생명의 끈을 간신히 이어가고 있다. 현진이처럼 미숙아인 경우도 있었고, 출생 후 '이유 모를' 증상으로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아이도 있다. 장에 이상이 있거나 식도 자체가 없어 수분과 영양 섭취가 안 되는 아이도 있다. 이들 조산아의 산모는 노산 기준인 35세 이상이었고 식물인간 상태인 신생아의 산모만 34세였다. 사실상 임산부로는 노령에 초산이 원인이었던 셈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5㎏ 미만인 저체중 출생아 수는 2000년 전체 출생아 중 3.8%에서 2009년 4.9%로 증가했다. 1.5㎏ 미만의 극소 저체중 출생아도 0.25%에서 0.57%로 늘었다. 저체중 신생아 대부분은 조산아(재태기간 37주 미만 또는 출생체중 2,500g 미만)다. 상계백병원 최명재 소아과 과장은 "매년 저체중 아이가 2만 명 정도 태어나고 있다. 곧 3만 명을 넘어설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아이들 대부분은 신생아중환자실에서 사투를 벌일 수 밖에 없다. 스스로 호흡하지 못하고 영양분을 섭취하지 못해 면역력이 최저인 상태이기 때문이다. 1월 말 32주 만에 출생한 동훈(가명)이는 태어나면서 입에 거품이 생겼고 이후 식도기능이 마비됐다. 병원 관계자는 "입에 거품이 생길 당시 응급처치가 빨리 이뤄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며 "면역력이 약한 조산아의 경우 특정 증상이 신체기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측불허로 원인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그만큼 저체중 조산아는 언제 응급 상황이 벌어질 지 알 수 없다.
24시간 내내 활력징후(호흡수, 맥박, 체온, 혈압)를 정기적으로 챙기는 수 밖에 없다. 한 신생아 중환자실 간호사는 "갑자기 움직임이 둔화된 아이들은 호흡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며 "아이들의 침묵이 가장 두렵다"고 했다.
저체중 신생아는 언제 꺼질지 모르는 등불과 같지만 우리의 의료시설과 수준은 제대로 방패막이 되지 못하고 있다. 최 교수는 "응급상황 발생 때 즉각 대처할 수 있는 신생아전문응급실 등 의료 시설과 신생아 수술이 가능한 전문의도 부족하다"며 "24시간 관리할 수 있는 중환자실 역시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임신 단계에서 태아에 문제가 있을 경우 낙태로 이어지는 게 현실이다. 최근 6개월 된 태아를 낙태한 김모(34)씨는 "태아의 심장에 이상이 있어 출산을 고민했는데, 병원에서 양수가 터진 걸로 하자며 은근히 권했다. 나 역시 태어난 이후의 아이가 고생할 걸 생각하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강윤주 기자 kkang@hk.co.kr
■ 신생아 중환자실 갖춘 병원은 전국에 90여곳 뿐 그나마 갈수록 줄어
경기 성남시 분당에 살고 있는 A(38)씨는 지난해 12월을 생각하면 분통이 터진다. 자정 무렵 임신 34주 만에 양수가 터져 조산을 해야 할 상황. 아이도 항문기형 등 진단을 받은 터라 수술이 시급했다.
하지만 당장 응급수술을 할 곳을 찾지 못했다. 조산아를 대상으로 한 집중치료실(중환자실)도 갖춰진 곳이 없었다. 결국 2시간 넘게 이곳 저곳을 다닌 끝에 서울까지 와야 했다. A씨는 "유명 대학병원마저도 여유 있는 인큐베이터가 없다는 이유로 거부하더라. 화가 나면서도 한숨밖에 안 나왔다"고 말했다.
해마다 조산ㆍ저체중 신생아 숫자는 늘고 있지만, 이들을 위한 의료 시설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신생아중환자실 병상 수는 전국에 1,344개. 이마저도 서울 475개, 경기ㆍ인천 289개로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신생아중환자실이 운영되는 의료기관도 90여 곳에 불과했다. 이는 2005년과 비교해도 의료기관은 50여 곳, 병상 수는 400여 곳이 줄어든 수치다. 한 소아과 전문의는 "돈이 안 되니 아예 병상을 줄이거나 중환자실을 없애는 것"이라고 했다.
피해는 고스란히 산모와 아이들에게 전가된다.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신생아중환자실 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09년 7월 2주간 고위험군 산모 400명 중 83명이 주거지역 내 의료기관에서 다른 시ㆍ도로 옮겨 치료를 받았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대부분 병상이나 중환자실의 장비가 부족하다는 게 이유였다"고 설명했다.
소아를 전문으로 하는 외과 전문의 부족도 문제다. 지난 1월 전북에서 장에 이상이 있는 영아가 제때 수술을 받지 못해 사망한 사건도 결국은 전문의가 없어서 생긴 인재(人災)다. 한 대학병원 소아과 전문의는 "의대생들의 외과기피 현상으로 아기 수술을 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이 부족한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정부는 올해 16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신생아중환자실 병상 50개를 늘리기로 했지만 턱없이 부족한 대책이다. 보건복지부 보고서가 필요하다고 추산한 병상은 최소 1,865개 이상이다.
남상욱 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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