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넋이로다 넋이로세 넋인 줄 몰랐더니 오날 보니 넋이로세 신인 줄은 몰랐더니 오날 보니 신이로구나 가련하다 어어어 망제씨…”
24일 밤 전남 진도군의 진도산림조합 추모관에서 씻김굿이 벌어졌다. 전날 7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진도씻김굿(중요무형문화재 72호) 김대례 명인을 위해 진도씻김굿보존회가 마련한 판이다. 망자의 넋을 깨끗이 씻겨 좋은 데로 가라고 빌어주는 이 굿은 음악과 춤이 일품이다. 그의 죽음으로 진도씻김굿의 오리지널 단골은 채정례(87) 명인만 남았다. 집안 대물림으로 단골네 핏속에 흐르던 소리와 몸짓을 요즘은 학교에서 배워서 공연으로 한다.
이날 굿은 곽머리씻김으로 했다. 출상 전날 시신 옆에서 하는 씻김굿이다. 150여명이 꽉 들어찬 좁은 빈소는 소란스러웠다. 워낙 뛰어났던 명인의 장례인 만큼 국악 공부하는 학생들, 내로라하는 악사와 소리꾼들이 우르르 온 데다 보기 드문 구경이 돼 버린 진도씻김굿을 사진 찍으려고 몰려든 이들까지 겹쳐 정작 고인과 이웃하며 지냈던 주민들은 엉덩이 붙이기가 어렵자 진도씻김굿보존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악사 김오현씨가 장내 정리에 나섰다.
“진도 어매들, 앞으로 오씨요. 카메라들, 뒤로 물러나시요. 진돗개가 사람 물드끼 여그 진도는 사람도 성질 나면 물어 부러요. 그라고, 여긴 굿판잉께 다들 술 한잔씩 드시요. 술 안 드실라믄 나가시요. 같이 동참해야지만 판이 됩니다.”
그렇게 협박 섞인 멘트가 있고 나서 저녁 8시께 진도다시래기로 판이 시작됐다. 다시래기는 상가에서 출상 전날 밤새 노는 익살극이다. 심봉사와 뺑파가 나와 수작을 하며 노는 꼴이 하도 재미있어 까륵까륵 웃느라 빈소가 뒤집어졌다.
다시래기를 짧게 끝내고 드디어 씻김굿이 펼쳐졌다.‘아무개가 죽어서 굿을 한다’고 알리는 안당으로 시작해 초가망석 손님굿 제석굿 고풀이 씻김 넋올리기 희설 길닦음을 거쳐 망자의 물건을 불태우며 배웅하는 마지막 종천까지 마치니 새벽 2시께. 그러고도 흥이 남은 문상객과 악사들은 더 남아서 저마다 소리와 춤으로 판을 벌였다. 진도씻김굿은 본래 그렇게 먹고 놀고 쉬면서 밤새 하던 것이다.
씻김굿의 중반인 제석굿까지는 산 사람들을 위한 판의 성격이 짙어서 슬픔보다는 흥이 앞선다. 제석굿은 특히 그래서 놀아도 참 대차게 논다. 고풀이부터는 음악이 구슬픈 계면조로 넘어간다. 망자의 넋을 달래는 순서이기 때문이다. 고풀이를 맡은 무녀 송순단씨가 긴 광목천을 들고 고(매듭)를 하나씩 풀며 망자의 맺힌 한을 풀어줬다. 이어 향물 쑥물 정화수를 작은 빗자루에 차례로 묻혀 정성스레 영돈을 씻겼다. 영돈은 돗자리에 망자의 옷을 펴서 둘둘 말아 세우고 그 위에 넋그릇과 솥뚜껑을 얹은 것으로 망자를 상징한다. 길닦음은 망자의 넋을 반야용선에 태워 저승 가는 길을 닦아 주는 순서다. 길게 펼쳐 양끝을 잡은 광목천 위로 망자의 넋이 미끄러져 갔다. 반야용선을 들고 길을 닦으며 무녀가 노랬다. “가자서라 가자서라 나무아미타불 왕생극락을 가자서라.”
이날 초가망석과 제석굿을 맡은 박미옥씨는 길닦음을 하면서 끝내 눈물을 비쳤다. 그는 2007년 별세한 진도씻김굿 명인 박병천의 딸로, 김대례 명인의 육촌 조카다. “우리 고몬데, 왜 안 울겄소. 너무 오래 아프셔서(김대례 명인은 10년 이상 병석에 있었다) 그게 젤로 마음이 아프요. 그 좋은 목소리, 그 좋은 끼를 마음대로 발휘 못하고 간 게 안타깝지. 참 따뜻한 분이셨는디. 당신은 김치 쪼가리만 자시면서도 ‘우리 미옥이는 좋은 안주 먹어야 헌다’고 상다리 부러지게 채리 놓고 기다리셨소. 배워라, 배워야 남 준다, 베풀고 살어라, 그 말씀이 가슴에 맺히요. 우리가 허는 일이 다 남 잘 되라고 빌어주는 거 아니요.”
진도씻김굿은 슬픔만의 공간이 아니다. 상주도 문상객도 허리가 꺾어지게 웃고 놀다가 울다가 한다.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윤진철 광주시립국극단장, 민속학자 이윤선(목포대 도서문화연구소 연구교수)씨, 피리의 달인 김광복(전남대 교수)씨 등이 판소리와 피리 연주로 소리 부조를 해서 흥을 돋웠다. 압권은 동네 할매의 ‘몸빼 살풀이’였다. 거칠거칠 주름진 손끝과 어깨춤에서 멋이 줄줄 흘렀다. 좌중에 환호가 터졌다. “아짐, 참말로 잘 춰 부러요.”너도나도 앞다퉈 나와 덩실덩실 어울리며 1만원권 지폐를 꽂아 주는 바람에 할매 허리춤이 금세 싯퍼런 배추밭이 되었다. 할매도 바지춤을 까더니 안에 입은 몸빼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은 1,000원짜리 몇 장을 꺼냈다. 전날 낙지 판 돈을 몽땅 내놓은 주민도 있었다. 굿 하느라 수고한 악사와 무녀들 쓰라고, 혹은 망자가 저승길 노자로 쓰라고 주는 돈이다.
새벽 2시께 굿이 끝난 뒤로도 북 치고 장구 잡고 피리 불며 한참을 놀았다. 살풀이부터 막춤까지, 단가(판소리 하기 전 목을 푸는 노래)부터 트로트까지 죄다 나오는데 어느 가락이든 장단이 척척 맞아 떨어지는 것이 신기했다. “여그까지는 중모리로 놀았응께 인자 동살풀이로 넘어갈끄나”하면 영국 민요 ‘대니보이’가 흥겨운 피리 가락으로 뽑아져 나오는 식이었다. 하긴 진도가 어떤 곳인가. 예로부터 글씨 그림 소리 잘 하기로 소문난 곳 아닌가. 그 흥이 어디로 가겠나.
망자는 분명 기분 좋게 좋은 데로 갔으리라. 굿의 끝순서 종천에서 망자의 옷이 다 타는 데는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바람이 많이 부는 밤이었다. 다음날인 25일 아침, 그는 매화꽃 피고 동백꽃 점점이 붉은 남도 들녘을 지나 집안 선산에 묻혔다.
진도=글ㆍ사진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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