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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 키우는 학생 평가] <1> 무엇을 위한 평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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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 키우는 학생 평가] <1> 무엇을 위한 평가인가

입력
2011.03.27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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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 창의·잠재력 본다는 입학사정관제 '엄마 능력 평가제'로

현 정부는 입시 정책의 핵심으로 대입에는 입학사정관 전형을 확대하고, 특목고 입시에는 자기주도학습 전형을 도입했다. 입학사정관제는 성적 위주의 획일적 선발 방식에서 벗어나 학생의 창의력과 성장잠재력, 소질과 적성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학생을 뽑겠다는 것이고, 자기주도학습 전형은 내신 성적과 면접 만으로 학생을 뽑도록 해 사교육의 도움 없이 스스로 공부하는 학생들을 선발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렇다면 이런 평가 방식이 입시와 교육 과정을 올바르게 변화시켰을까. 현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오히려 학교 시험과 입시를 왜곡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자기소개서 대필

논술학원 강사 박모씨는 지난해 입학사정관 전형에 응시한 학생들의 자기소개서를 '손질'해줬다. 어머니가 아이의 성장과정과 장단점, 특성을 적어 가져오면 자기소개서 분량에 맞게 내용을 요약하고, 첨삭해 주는 방식이었다. 박씨는 자기소개서를 수정해주고 100만원을 받았다.

박씨는 "강남 쪽에선 어머니들이 학생들의 자기소개서를 학원 강사들에게 주로 맡긴다. 심지어 국문과 교수를 찾아가 검토 및 수정을 부탁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학원에서 자기소개서를 고쳐주는 비용은 50만~100만원, 교수들이 봐주는 경우엔 비용이 수백만원에 이른다고 박씨는 귀띔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올해 입시부터 자기소개서와 교사추천서의 표절 여부를 가려내는 검색 시스템을 도입해 전체 대학에서 운영하도록 할 계획이다. 이럴 경우 '모범 답안' 형식의 자기소개서를 베낀 것은 걸러낼 수 있지만 대필한 서류까지는 잡아낼 수 없다.

박씨는 "대학에서 자기소개서를 데이터베이스화해서 베끼는 것을 걸러내고 있기 때문에 똑같은 문장을 쓰는 경우는 없다. 학생 개인에 맞춰 내용을 작성하고, 보충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교사 추천서의 상당수도 학원 강사들이 작성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입시관계자는 "어머니들이 학원에서 추천서를 받아가면 교사들이 이를 해당 대학 사이트에 입력한다. 강남의 S, J, K고 등에선 대부분 이런 식으로 추천서가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봉사활동 실적도 엄마들의 능력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한 교육 관계자는 "어떤 학부모는 친분이 있는 목사를 통해서 노숙인 배식 자원봉사 서류를 받아오더라. 발이 넓은 어머니들은 봉사활동 100시간 실적 정도는 뚝딱 만들어 낸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창의력을 보겠다는 입학사정관 전형은 이렇게 학부모들의 능력 평가로 변질되고 있다. 서울의 한 사립대학 입학처 관계자는 "어떤 어머니들은 수시로 학교로 찾아와 입학사정관 전형에 대비하려면 어떤 서류와 스펙을 준비해야 하는지 문의한다. 대부분 경제력이 뒷받침되는 학부모들로 저소득층이나 맞벌이 부모들은 감히 흉내도 낼 수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학생들의 점수를 깎아라"

서울 서초구의 A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이모 교사는 "중간ㆍ기말고사가 다가오면 어떤 문제를 내야 할지 머리가 아프다"고 말했다. 이유는 내신 등급 때문이다.

외고 입시 1단계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영어 내신 1등급(상위 4% 이내)은 필수로 여겨진다. 최소한 2등급(상위 5~11%)은 받아야 외고 지원이 가능하다. 외고 입시의 치열한 경쟁을 감안할 때 3등급(상위 12~23%)은 합격 가능성이 희박하다. 실제로 지난해 서울 지역의 6개 외고 합격자의 영어 내신 성적은 평균 1.6등급이었다.

문제는 쉬운 시험으로 만점자가 많아질 경우 1등급을 받는 학생이 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전교생이 200명일 경우 4%인 8등까지 1등급을 받지만 만약 만점자가 16명이 되면 동석차 처리 원칙에 따라 해당 학생들은 모두 2등급으로 내려 앉는다. 동석차 처리 원칙은 일선 학교들이 점수를 후하게 주는 '내신 부풀리기'를 막기 위해 마련됐다.

이럴 경우 외고 합격생을 배출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적어지기 때문에 외고 지망생의 학부모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게 된다. 이 교사는 "요즘은 영어 잘하는 학생들이 워낙 많아 일부러 영어 시험을 어렵게 꼬아 출제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학교 시험이 교육과정을 얼마나 이해했는지를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입시를 위한 한 줄 세우기용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학부모들의 불만도 크다. 목동의 M중학교에 다니는 딸을 둔 고모씨는 "아이 이야기를 들어보면 교과서에서 나오는 문제는 50% 정도밖에 안 된다고 한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은 별로 없으면서 시험을 어렵게 내니 학원을 다닐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목동에서 과외방을 운영하는 한 강사는 "중학생들이 치르는 시험 문제 가운데 일부는 대입 수능 문제 수준"이라며 "학교 수업만 받아서는 결코 풀 수 없는 문제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한준규 기자 manbok@hk.co.kr

■ "교육적 평가 왜 못하나" 비판에 교사들 항변

학생 평가 방식에 대해서는 일선 교사들도 할 말이 많다. 참교육을 위한 평가 방식이야 누구보다 잘 알지만, 일단 상급학교 진학에 방해가 되면 쏟아지는 항의를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 공통된 목소리다.

교육과학기술부와 교육청은 "학생의 수업 이해도를 평가하는 바람직한 문제를 내고, 창의적 인재 양성을 위해서 서술형 평가를 확대"하라고 지침을 내려 보낸다. 하지만 교사들은 "그렇게 이상적인 시험을 냈다간 큰일난다"고 말한다. "시험을 최대한 쉽게 내지 않기 위해 시험기간이 되면 교사들도 긴장한다."(경기 D고 C교사), "서울대 연대 고대 진학할 상위권 내신 관리에 신경을 쓴다. 너무 쉬워서 1등급 수가 많아지면 안 된다."(서울 S고 K교사), "서술형이어도 답은 명확히 갈려야 한다."(서울 A중 L교사) 등 학교 현장에서 통하는 시험 출제 요령은 따로 있다는 것.

교육당국은 이러한 사정을 모르는 바 아니나, 그럴수록 창의성 평가를 강조한다. 서술형 평가 비율까지 정해 독려하지만 현장의 반응은 차갑다. 김혜남 문일고 영어 교사는 "시험 기간마다 난리가 난다. 서술형 평가 결과를 놓고 대학교수인 학부모가 항의하고, 전문가 자문을 구해 리포트로 반박하고, 미국 일상회화에서 통했다고 항의한다"며 "교사들이 이를 검토하느라 학사일정을 늦춘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교사의 채점 권한도 상당히 제한적이다. 과학 담당인 이창희 대방중 교사는 "서술형 답안지는 여러 경우의 수로 제출되고 이를 교사들이 돌려가며 교차채점 하는데도 공정성 논란이 항상 있다"며 "정답과 꼭 일치하지는 않아도 정답으로 간주할 있는 경우 협의를 거쳐 채점할 수 있는데 감사에서 지적을 받거나 경위서를 내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분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내신에 민감한 과목 교사들은 애초에 명백하게 답이 갈리는 문제를 내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김 교사는 "학생들은 입시에 무척 민감하고, 수업은 20~30명씩 앉아서 획일적 강의식으로 진행되는데 이런 현실은 그대로 두고 성급하게 평가만 창의적인 것을 요구하다 보니 일부 평가과정이 왜곡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학급당 학생 수가 줄고 창의인성 수업이 자리잡고 대학 입시문제도 전반적으로 함께 개선돼야 제대로 된 창의성 평가, 교육적 평가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혜영 기자 shine@hk.co.kr

■ 내신의 딜레마

내신이 대입에 반영되기 시작한 1981년 이후 내신 평가방식은 10~15년 주기로 상대평가와 절대평가가 번갈아 시행돼 왔다. 상대평가는 학생들의 과도한 경쟁과 성적에 따른 서열화를 조장한다는 문제가, 절대평가는 '성적 부풀리기'로 인한 내신 신뢰도 하락, 고교 등급제 부활 등의 우려가 제기된다.

교육과학기술부는 현행 상대평가 방식의 내신 9등급제를 2014년부터 'ABCDEF'의 6단계 절대평가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지금의 평가 방식은 동료 학생들 간의 배타적 경쟁심과 석차에 대한 과도한 스트레스를 조장해 결과적으로 사교육 유발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또한 교사들은 학생의 학업 성취 수준을 평가하기보다 '줄 세우기'를 위해 어려운 '함정 문제'를 출제하는 부작용이 생기고, 학생의 진로와 적성을 고려한 창의적인 교육과정 운영이 어렵다는 점도 제기됐다.

현 정부와 이념적으로 대척점에 있는 전국교직원노조나 진보 성향의 교육감들도 절대 평가로의 전환에는 원칙적으로 찬성한다. 고교 내신 평가가 대학 입시를 위한 선발 기능 보다 학생 개인의 능력과 성장과정을 평가하는 방식으로 전환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절대평가 전환은 대입에서의 특목고 우대, 고교등급제와 대학별 본고사 부활로 이어질 것이라는 현실적인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전교조는 "현재의 입시구조에서는 성적 부풀리기로 인한 내신 신뢰도 하락이 우려되고, 대학들이 변별력 확보를 위해 대학별 고사를 치를 가능성이 높다. 또 암암리에 고교등급제가 시행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내신 불이익이 줄어드는 특목고로 학생들이 몰려 사교육 시장이 다시 요동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한 교육계 인사는 "지금도 노골적으로 특목고 출신 학생을 우대하고 있는 대학들의 선발 방식을 고려할 때 이에 대한 철저한 관리감독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오히려 교육 현장이 파행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한준규 기자 manb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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