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년간 프로야구의 질적 성장도 눈부셨다. 최고 인기스포츠이다 보니, 선수들의 연봉은 물론 관중수, 중계권료 등 외적 성장이 야구 발전의 탄탄한 밑거름이 됐다.
‘몸값’의 성장 폭이 가장 눈에 띈다. 82년 원년 당시 연봉 상한선은 2,400만원(하한선 600만원)이었다. 당시 아마추어 최고 스타인 김재박(MBC)과 미국 프로야구에서 돌아온 박철순(OB) 등 단 두 명만이 최고 대우인 이 금액을 받았다.
MBC 투수 하기룡이 2,000만원으로 뒤를 이었고, ‘거포’ 김봉연(해태)과 김용희(롯데)가 각각 1,800만원과 1,600만원을 받는 등 ‘1,000만원대 연봉자’가 대다수였다. 당시 6개 구단 선수 평균연봉 1,215만원은 서울 아파트 한 채 값과 비슷한 금액이었다.
올해는 정반대로 연봉 하한선이 2,400만원. 최고 연봉은 두산의 김동주로 7억원을 받았다. 최저 연봉은 30년 동안 4배 뛰었고, 최고 연봉은 30배 가까이 폭등했다. 강산이 세 번 바뀌는 동안 연봉도 천정부지로 치솟은 것이다.
관중 증가세도 폭발적이었다. 원년 144만명이던 관중은 이듬해 곧바로 200만명을 돌파해 226만명이나 됐다. 지역 팬의 확고한 지지를 등에 업은 프로야구는 90년 300만 관중시대를 열었다. 특히 지난해에는 역대 최다인 593만명이 야구장을 찾아 올해 목표인 660만명 돌파의 가능성을 한층 높였다.
프로야구의 인기가 폭발적으로 높아지면서 중계권료 등 수익도 크게 늘었다. 원년 정규시즌에서는 21억3,048만원 가량의 입장료 수입을 올렸다. 경기당 평균 888만원. 지난해에는 20배 가까이 늘어 약 412억1,415만원으로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 경기당 평균 수입도 7,747만원이나 됐다.
특히 중계권료의 경우 원년에는 3억원이 채 되지 않았지만 올해는 지상파 TV, 스포츠 전문 케이블채널, 모바일, 인터넷 등을 합해 230억원 가량을 벌어들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편 개막전 시구자의 변천사도 흥미롭다. 80년대가 군사정권 시절인 만큼 초기에는 정치인이 독점하다가 최근에는 연예인이 마운드에 오르고 있다. 82년 개막전은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직접 시구를 했다. 그러다가 89년 영화배우 강수연이 광주에서 열린 해태와 빙그레의 개막전 시구를 했고 채시라(1996년), 한석규(1998년), 최민식(1999년) 등이 바통을 이어 받았다.
김종한기자 tell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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