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수
물들기 전에 개펄을 빠져나오는 저 사람들 행렬이 느릿하다.
물밀며 걸어들어간 자국 따라 무겁게 되밀려나오는 시간이다. 하루하루
수장되는 길, 그리 길지 않지만
지상에서 가장 긴 무척추동물 배밀이 같기도 하다. 등짐이 박아넣는 것인지,
뻘이 빨아들이는 것인지 정강이까지 빠지는 침묵. 개펄은 무슨 엄숙한
식장 같다. 어디서 저런,
삶이 몸소 긋는 자심한 선을 보랴. 여인네들...... 여남은 명 누더기누더기
다가온다. 흑백
무성영화처럼 내내 아무런 말, 소리없다. 최후처럼 쿵,
트럭 옆 땅바닥에다 조갯짐 망태를 부린다. 내동댕이치듯 벗어놓으며
저 할머니, 정색이다
"죽는 거시 낫겄어야, 참말로" 참말로
늙은 연명이 뱉은 절창이구나, 질펀하게 번지는 만금이다.
● 민요를 연구하는 지인이 갯벌에서 불리는 노동요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바닷가 노인들을 만나 물어보았다. 죽을힘까지 다 쓰고 나오는 뻘에서 무슨 힘이 남아 노래를 부르겠냐고, 그런 노래가 어디 있겠냐고 손사래를 쳤다. 끝내 뻘일을 하며 부르는 노동요를 찾지 못했다.
물이 난 시간에 집약적으로 작업하는 뻘일은 힘들고 위험하다. 뻘을 괭이로 이르거나 조개 숨구멍을 찾아 뻘밭을 누비는 일 모두 상노동이다. 조개가 숨 쉬는 구멍을 조개눈이라고 하는데 이를 찾는 일도 만만치 않다. 어떤 날은 조개가 눈을 뜨지 않는 날도 있다. 이때는 뻘을 밟으며 올라오는 물로 조개눈을 만들며 작업을 하기도 한다. 허리 구부려 엉덩이를 치켜들고 조개구멍 찾는 모습은 흡사 한 마리 새 같다. 물이 밀려들어올 때 조개들이 눈을 많이 뜨기 때문에 뻘꾼들은 물이 발 끝에 닿을 때까지 일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물골을 타고 뒤로 밀려온 물에 에워싸여 죽기도 한다.
뻘밭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풍경을 이동시점으로 쓴 시네요. 처음에는 사람들로 그리다가 거리가 가까워지며 여인네들로 그리다가 다시 할머니로 그리네요. 조개처럼 입 꾹 다문 침묵의 행렬이 다가와서 한마디 툭 토해놓네요. ‘죽는 거시 낫겄어야, 참말로’ 아,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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