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일대의 풍경 자연미를 나는 문필로 묘사할 능력이 없다."산수(山水) 표현에도 달인이었던 시인 정지용씨(1902~1950?)가 경남 통영 일대를 둘러보고 쓴 6편짜리 기행문의 결론이었다. 흔히 통영을 '바다의 땅'이라 부른다. '땅에서 바라보는 바다'보다 '바다에서 바라보는 땅'이라는 의미가 먼저 와 닿는다. 겨울 동해, 여름 서해, 봄가을 남해라는 말도 있다. 또 봄엔 경남, 가을엔 전남이라고 한다. 3월말~4월초 통영바다는 거대한 거울을 닮은 산정(山頂)의 호수다. 달리는 배는 가만히 있는데, 둘러싼 섬들이 모습을 바꿔대며 왔다갔다 한다.
■ '통영국제음악제(TIMF)'가 오늘부터 1주일간 이어진다. 2000년 통영문화재단이 윤이상씨(1917~1995)를 기리기 위해 개최한 '통영현대음악제'를 이어받아 2002년부터 국제음악제로 전환했다. 외국인 예술감독에 처음 임명된 뮌헨 체임버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인 독일인 알렉산더 리브라이히씨는 올해의 주제를 'Moving Dimension(전환)'으로 정했다. 그는 "짧은 삶에서 시간을 낭비할 여력은 없다. 통영에 와서 느끼고 듣고 어울리자"고 말했다. 통영과 음악제를 느끼는 게 인생의 전환일진대, 갈까 말까 망설이는 시간마저 삶의 낭비라는 얘기다.
■ 오늘 TIMF 개막연주로 예정됐던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오케스트라' 공연이 취소됐다.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사망 후 그의 부인이 창단(1841)했다는 이 관현악단을 만날 수 없게 된 것은 아쉽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유출 때문에 내한할 수 없다고 했다. 우리 정부의 '안전보장 발표'에도 불구하고 1986년 체르노빌 원전 폭발사태를 바로 옆에서 경험했던 공포가 컸기 때문일 터이다. TIMF측은 대신 '(예술감독)리브라이히와 좋은 친구들'이라는 흥겨운 기획공연을 마련하고, 수익금 전액을 일본 대지진 구호성금으로 쓰겠다고 밝혔다.
■ 통영이 예술과 문학의 고장이 된 것은 거기서 태어난 예술인과 문학인이 많아서만은 아닐 터이다. '바다의 땅'이라는 표현이 그렇듯 예술과 문학을 포용하는 흡인력 덕분이다. TIMF의 근원이 된 윤이상씨는 경남 산청에서 태어나 통영바다 옆에서 자랐다. 통영 최고 명물인 미륵도의 미륵산 정상에 문학비가 세워져 있는 정지용씨는 충북 옥천 출신이다. '묘사할 능력이 없다'던 시인이 통영바다를 바라보며 묘사해 놓은 글을 옮긴다. "만중운산 속의 천고절미한 호수…. 여기에서 흐르는 동서지류가 한려수도는커녕 남해 전체의 수역을 이룬 것 같다."
정병진 수석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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