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규제 많은 부동산 NO, 불안한 증시 NO"
지난 20일 중국 최대의 예술 메카인 베이징(北京) 따산즈(大山子) 798예술구 의 울렌스 현대미술센터(UCCA). 벨기에의 예술품 콜렉터 울렌스 부부가 중국 등 세계 현대미술 1,500점을 소장하고 있는 사설 미술관으로 2007년 11월 문을 연 이곳에는 내달 홍콩 소더비 경매에 내놓을 중국 현대미술품 100여 점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울렌스씨는 할아버지와 아버지, 삼촌이 모두 주중대사를 지낸 탓에 자연스럽게 중국문화에 심취했고, 일찍부터 중국 미술품을 사들였다. 그는 이른바 중국 현대 미술계의 4대 천왕으로 불리는 웨민쥔(岳敏君), 장샤오강(張曉剛), 팡리쥔(方力鈞), 왕광이(王廣義) 등 중국 블루칩 작가 작품들을 중국을 포함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장한 콜렉터다. 그런 그가 최근 스스로 연로하다는 이유로 중국에서 철수하고 소장품들을 경매에 내놓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울렌스씨는 UCCA의 운영도 중국인에게 넘기겠다고 공언했다. 그 동안 중국 현대미술품시장이 영국 미국 등 서구 콜렉터를 중심이었던 시대가 서서히 저물고 있음을 단적으로 상징하는 일이다.
예술품 거래총액 세계 1위
중국 경제의 급성장으로 중국 내 부호들이 급증하면서 중국 밖으로 빠져나간 미술품을 재구매하겠다는 애국주의적 콜렉트 붐이 최근 중국에서 거세게 불고 있다. 한마디로 지난 세기 허물어진 '중화문화의 복귀' 선언이다. 물론 애국주의가 전부는 아니다. 오히려 부동산과 증권 등으로만 쏠렸던 중국 부자들의 투자대상이 예술품으로 확장됐다고 봐야 한다. 최근 중국 예술품에 대한 가격재평가로 가치가 급상승하면서 미술품시장이 자국 내 투자열기로 들썩이고 있는 것이다.
세계적 경제 전문잡지인 포브스 중문판이 최근 발표한 '2010년 중국개인재부(財富)백서'에 따르면 중국 내 천만장자(재산 17억1,300만원 이상)는 38만3,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이는 부동산 등 유동성이 낮은 자산을 제외한 현금 등 투자 가능한 자산을 가진 천만장자를 가리킨다. 부동산까지 포함할 경우 그 수는 무려 88만명에 가깝다. 또 지난해 중국의 억만장자(171억3,000만원)수는 2만명을 넘어섰다.
포브스는 지난해 중국의 투자 가능한 개인자산 총액이 100조위안에 가깝다고 추산했다. 이같이 어마어마한 자금 가운데 최소한 0.1%인 1,000억위안(17조원)이 유동자금으로 지난해 중국 미술품 시장에 유입됐다고 홍콩 밍바오(明報)는 최근 보도했다. 이를 반영하듯 지난해 중국 예술품 경매시장에서 거래된 총액은 573억위안(약 9조8,000억원)으로 전 세계 예술품 거래액의 33%를 차지했다. 중국은 세계 예술품 시장에서 거래액 기준으로 미국(30%) 영국(19%) 프랑스(5%)를 제치고 세계 1위의 예술품 경매시장으로 올라섰다. 중국이 1950년대 이후 60여년간 세계 예술품 거래 양대산맥인 미국과 영국의 아성을 깬 것이다. 세계적인 미술정보 월간지 아트프라이스의 티에리 에르만 회장은 "세계 예술품시장은 이제 중국을 통해 역사적 전환점을 맞고 있다"며 "중국은 경제굴기를 바탕으로 미술품 시장에서도 '월드 넘버원'이 됐다"고 말했다.
부동산규제로 미술품에 돈 몰려
중국의 부자들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부동산과 주식투자를 선호한다. 그러나 최근 당국의 부동산투기 규제강화와 증시불황 여파로 이들은 새로운 대체투자처를 찾으며 보석, 현대미술품, 고대서화 등 골동품에 대한 투자가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의 부유층 전문조사리포트인 후룬(胡潤)보고서에 따르면 부(富)를 따지는 것에서 격을 중요시하는 것으로 달라지고 있는 중국 내 세태도 미술품 소장을 늘리는데 한 몫 하고 있다.
'중국의 워런 버핏'으로 통하는 증권투자회사 신리이(新利益)그룹의 CEO 류이첸(劉益謙ㆍ48) 회장과 부인 왕웨이(王薇)씨는 지난 한 해 총재산 100억위안 가운데 20억위안을 미술품 수집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류회장은 지난해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쌍학향로를 1억2,000만 홍콩달러를 주고 샀다. 부인 왕씨는 중국현대미술의 거장 쩡판즈(曾梵志)의 '탈 시리즈'(2,657만위안)를 구매했다. 이 부부는 5년내 상하이(上海)에 미술관을 건립할 계획이다. 베이징 룽바오 옥션의 류상융(劉尙勇) 총경리는 "5년 전 70만위안(1억2,000만원)에 산 한 유화작품이 지금 무려 2,000만위안(34억2,000만원)으로 폭등했다"며 "기존의 큰 손 콜렉터들은 물론 최근엔 신흥 부자들까지도 예술품 투자에 적극 뛰어들면서 중국 예술품 시장에는 돈이 넘쳐나고 있다"고 말했다.
거품인가 전망 좋은 투자처인가
중국 예술품 시장의 뜨거운 열기만큼 거품 논란도 빠질 수 없다. 미국 발 금융위기로 2008년과 2009년 심각한 침체기를 겪었던 중국 미술품 시장이 지난해 말 이후 다시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베이징 798 화랑가 등 전반적인 분위기는 2년 전 거품 후유증에서 아직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지나치게 과열되는 것이 조심스럽다는 반응이다.
특히 현대 미술품에 대한 거품은 우려사항으로 꼽힌다. 반면 중국 예술품시장은 도자기와 고서화가 전체 50% 이상을 차지하고 골동ㆍ가구ㆍ보석이 강세이며 현대미술품은 20% 미만이어서 거품이 끼어도 대세상승세를 거스르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표갤러리 798의 김유림 디렉터는 "2006년부터 중국미술 시장이 거품이라는 지적은 있었지만 금융위기를 겪은 이후 중국 미술품시장의 회복 속도는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히 빠르다"며 "확실한 것은 미술품이 이미 하나의 투자 분야가 됐고 전세계 미술품시장가격지수는 점점 높아지고 있어 중국시장의 전망은 밝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베이징=장학만특파원 local@hk.co.kr
■ 김수현 아라리오 갤러리 베이징 관장
"중국의 부호들이 늘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 미술품시장의 성장 전망은 밝아요. 과거에는 중국 예술품들을 서방 콜렉터들이 주로 구매했다면, 이제는 시대가 바뀌어 중국인들이 사들이고 있을 뿐이죠."
세계적 예술품 정보잡지인 가 선정한 세계 200대 콜렉터 중 우리나라 기관으로 유일하게 뽑힌 천안(주)아라리오 갤러리 베이징지점의 김수현(사진) 관장은 24일 향후 중국 미술품 시장의 전망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김 관장은 "올 들어 중국 예술품의 경매시장은 3년 전 금융위기로 인한 침체기에서 벗어나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며 "그 회복 속도는 다른 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르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말부터 경매, 갤러리, 아트페어 등에서 현대미술품 판매가 꾸준히 증가해 올해 시장성장률이 30% 이상이 될 것"이라며 "중국정부당국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는 시장이라 거품에 따른 급락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서울옥션에서 중국미술품경매 수석전문가를 역임하는 등 10년간 중국 미술품 매매에 발을 담가온 그는 "현대미술 4대 천왕의 작품들은 이미 고가의 작품이 돼 손 바뀜이 쉽게 이뤄지지 않고 있지만 신흥부자들은 사회주의적 색채에서 벗어난 차세대 작가 작품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국에 진출한 한국 갤러리들도 중국부자들의 투자선호도에 맞는 마케팅 전략개발에 집중해야 한다"며 "한국 미술품의 판매에도 중국특유의 취향을 고려한 접근방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베이징=장학만특파원 local@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