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산유국의 왕족들과 아라비아 상인들이 가족 사금고와 투자처를 스위스나 영국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북아프리카에서 시작된 민주화 시위가 바레인과 오만으로 확대되며, 페르시아만도 더 이상 안전한 투자처가 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5일 중동 불안감 확산으로 이 지역 큰손들이 투자 자금 중 일부를 역외로 돌리는 경우가 잇따르고 있다고 보도했다.
컨설팅회사인 부즈앤코에 따르면 걸프 지역 부동 자금의 규모는 무려 1조2,000억달러. 이중 10%만 움직인다 해도 투자 자문사나 금융기관들은 바빠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집트 증시의 종합주가지수라고 할 수 있는 CASE30은 1월 7,200선을 돌파했었으나 이후 민주화 시위가 거세지며 급락세로 반전, 최근에는 5,000선도 붕괴됐다. 자금이 빠지고 있다는 신호다. FT는 JP모건 중동지역본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 "아직 공황 정도는 아니지만 산유국 왕족과 부호들 모두 시장의 추이에 신경을 곤두세운 상태"라며 "이미 일부 자금은 유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흐름이 계속될 경우 자금의 역외 유출이 급물살을 이룰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중동 국부펀드들의 경우에는 해외 투자보단 역내 투자를 더 늘려야 할 처지다. 민주화 시위를 잠재우기 위해서도 투자를 통한 더 많은 일자리 창출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미 쿠웨이트투자청은 36억달러 상당의 상업용 자산을 매입하겠다고 밝혔고, 아랍에미리트(UAE)도 저소득층을 위한 인프라 확충에 15억달러를 쓰겠다고 발표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실업난 해소와 주택건설 등에 무려 900억달러를 투자키로 했다. 다만 막상 투자처는 마땅치 않고 그 효과도 미지수다.
어쨌든 재스민 혁명과 민주화 시위가 이 지역 부(富)의 지도까지 바꿔놓고 있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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