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기사를 꿈꾸는 바둑 영재들의 배움터 바둑전문도장이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환골탈태했다. 그동안 국내 바둑계에는 권갑룡도장, 허장회도장, 양재호도장, 유창혁도장, 장수영도장, 이세돌명지바둑도장, 양천대일 등 고만고만한 규모의 일여덟 개 바둑 전문 도장이 공존하면서 선의의 경쟁을 벌여왔다. 그러나 최근 허장회, 양재호, 유창혁 도장 등 3개 도장이 통합해 교수진이 열 명도 넘고 번듯한 기숙사 시설까지 갖춘 초대형 바둑 전문 도장으로 새로 태어나 화제다.
새 학기 시작에 맞춰 지난 달 문을 연 충암바둑도장은 우선 규모가 엄청나다. 총 면적이 340평으로 강의실 연구실과 함께 4인 1실 규모의 기숙사 19개실을 갖추고 있어 사설 바둑 도장이라기 보다는 바둑 사관 학교라는 별명이 더 잘 어울린다.
현재 원생수는 80여명. 거의 전원이 바둑 특기생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충암 초·중·고교 재학생들이다. 이 밖에 진시영, 이춘규, 강훈, 권형진, 황진형, 박시열, 이슬아, 이형진, 김누리, 나현, 최정, 장건현, 김세동 등 입단한 지 1~2년 남짓한 스무살 안팎의 신예 프로 기사들을 비롯해 국내 아마 랭킹 1위 이상헌과 정찬호 등 아마 강자들도 여럿 합류, 다른 학생들과 똑같이 도장에서 합숙하며 교육을 받고 있다.
원장인 허장회 9단 외에 양재호•최규병•유창혁 9단이 대표 사범이고 이상훈• 박영훈 9단, 한종진•이영구•이희성 8단, 이정우 7단, 김대용 4단 등은 전담 사범을 맡고 있다. 특히 이상훈, 한종진 사범은 원생들과 똑같이 도장 부설 기숙사에서 24시간 함께 기거, 바둑 수업은 물론 개개인의 생활 지도까지 담당하고 있다.
충암도장은 단순히 규모가 크다는 것 뿐 아니라 두 가지 면에서 기존 도장들과 크게 차별화된다. 하나는 도장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원생들이 거의 모두 충암학원 재학생들이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도장이 충암학교 정문 바로 옆에 위치한 충암스포츠센터 6층에 자리잡고 있다는 점이다. 학교와 도장이 바로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기 때문에 학생들이 아침에 학교에 출석해 정상 수업을 마친 후 바로 도장으로 돌아와 바둑 공부를 계속하는 데 전혀 불편이 없다. 원생들이 모두 도장 내에 있는 기숙사에서 생활하므로 이동 거리가 짧아져 시간이나 체력면에서 크게 절약이 된다. 학교 운동장에서 운동을 하거니 도장과 같은 건물에 있는 수영장, 헬스 클럽, 볼링장 등 체육 시설을 이용할 수도 있다. 하루 세끼 식사도 모두 학교 식당에서 해결한다. 과거 개인 도장에서 원생들이 아파트 한 채를 빌려 함께 생활하면서 도우미 아줌마를 고용해 숙식을 해결했던 것과 비교하면 훨씬 위생적이고 경제적이어서 학생들은 물론 학부형들이 더 좋아한다는 것.
이를테면 사설 바둑 도장이 학교 바둑부의 상설 훈련 캠프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3개 도장이 통합한 가장 큰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동안 바둑 전문 도장에서는 원생들의 통학 문제가 가장 큰 골칫거리였다. 그래서 대부분의 원생들이 학교에는 형식상 이름만 걸어 놓고 시험 때만 잠깐씩 출석하는 게 일반적인 관례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체육 특기생 전반에 대해 학교 수업을 강화하는 쪽으로 정부 방침이 변한데다 학부모들도 자녀들이 학교 수업을 제대로 받기를 원하는 분위기여서 그렇다면 아예 학교 옆으로 도장을 옮기면 어떠냐는 제안이 나왔다. 그럴 경우 적정 운영 규모를 확보하기 위해 아예 3개 도장이 통합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고 1년여의 준비 과정을 거쳐 마침내 초대형 도장이 출범한 것.
이는 물론 허장회, 양재호, 유창혁 등 3개 도장 원장들이 모두 현역 프로 기사이자 충암고 선후배 사이였기에 가능했다. 학교측에서도 바둑 명문교답게 충암도장 원생들을 우선적으로 특기생으로 받아주고 학교 급식을 제공하는 등 많은 지원을 했다
충암바둑도장과 같은 운영방식은 학교와 사설 도장이 긴밀히 협조해 특기 교육을 실시하는 새로운 선례로 평가된다. 이는 다른 스포츠 종목에서도 유례가 없는 일로 공교육과 사교육이 적절히 조화를 이뤄 서로 윈윈의 효과를 거두고 있는 셈이다.
박영철 객원 기자 indra36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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