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가 무겁고 힘듭니다.”
수화기 넘어 쉰 목소리가 들려왔다. 프로배구 삼성화재 플레이오프(PO) 2연승의 주역인 리베로 여오현(33)이었다. 용병 가빈 슈미트가 한 경기 역대 최다인 57득점을 퍼부은 뒤 “나는 로보트가 아니다. 정말 피곤하다”고 토로한 것처럼 여오현도 그물망 수비를 펼치느라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또 쉴새 없이 파이팅을 외친 터라 목소리가 성할 리 없었다. 여오현은 지난 24일 현대캐피탈과 PO 2차전에서 역대 포스트시즌 한 경기 최다인 28개 디그(93%ㆍ공격을 걷어 올리는 것ㆍ종전 25개)를 성공시키며 팀 승리의 ‘명품조연’이 됐다.
175㎝, 70㎏의 여오현은 이번 PO에서 총 40개의 디그를 성공했다. 세트당 5개로 높은 수치다. 이는 여오현의 2010~11 시즌 세트당 평균 3.067개를 훨씬 상회하는 기록. 자신이 역대 포스트시즌 한 경기 최다 디그를 기록한 줄도 몰랐던 여오현은 “공이 제 쪽으로 많이 오는 등 운이 좋았다”라며 겸손하게 웃었다. 그는 “어제 같은 경기는 긴장도가 높기 때문에 체력 소모가 배로 든다. 경기 후 숙소로 돌아와 부항을 뜰 시간도 없이 바로 뻗었다”라고 털어놓았다.
공중에서 가장 바쁜 선수가 가빈이라면 여오현은 코트 바닥에서 가장 바쁜 ‘수비대장’이다. 그는 공을 향해 어김없이 몸을 던지고 또 던진다. 삼성화재 ‘수비의 끝’이라고 불리는 여오현은 PO를 앞두고 수비의 위치 선정에 관한 끊임없는 연구로 좋은 성과를 올리고 있다. 그는 “문성민과 소토는 알아주는 테크니션이기 때문에 연구를 해야만 스파이크를 받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
‘천하의 리베로’ 여오현도 가빈의 가공할만한 파워에는 혀를 내둘렀다. 그는 “가빈의 스파이크를 받아볼 기회가 많이 없었지만 타점이 워낙 높고 스피드도 빼어나 나라도 받기 힘들다. 타점이 높으면 공을 받을 때 더 많이 튀기 때문에 정확한 리시브가 힘들어진다”라고 설명했다. 삼성화재 레프트 김정훈의 서브리시브 능력 향상도 여오현의 공이 크다. 여오현은 “서브리시브에서 자신감이 가장 중요하다”며 김정훈을 격려하고 있다. ‘훈련에서 나오는 습관’이 코트에서도 이어진다는 철학을 가진 여오현은 “3차전에서 끝내면 좋겠다. 그러면 숨 돌릴 시간을 갖고 챔피언결정전을 준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26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열리는 PO 3차전의 향방도 현대캐피탈이 여오현의 그물망 수비를 뚫을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두용기자 enjoysp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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