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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재앙에 대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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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재앙에 대한 생각

입력
2011.03.25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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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계획과 의지를 꺾는 크고 작은 재앙은 늘 우리의 삶과 함께 한다. 예컨대 자주 찾던 식당이 갑자기 문을 닫거나 성격 좋던 직장 상사가 돌변하는 상황들로부터 지진 전쟁 화산폭발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변고는 우리의 뜻과 무관하게 벌어진다는 점에서는 모두가 재앙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소소한 우연의 상황을 재앙으로 여기지 않는 것은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 있기 때문이다. 대재앙을 만나기 전까지는 세상이 ‘뜻대로’ 이루어진다는 생각에 안주하며 벗어나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는 걸 뜻대로 된다고 생각함은 우연성에 대한 망각이요 인간의 계획과 의지력에 대한 자만이다. 대재앙은 우리의 망각을 일깨워 주고 우리가 빠진 오만과 편견에 경종을 울려 준다.

재앙의 시작은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이다. 자신의 계획과 의지에 의해 태어난 사람은 없으며, 자신의 계획과 의지에 따라 죽는 사람도 없다. 태어나서 어떤 사람들과 만나고 어떤 일을 하게 되며 어떤 사건을 겪으며 언제 어떻게 죽음이 찾아올지 알지 못한다. 삶은 온통 우연으로 가득 차 있다. 사람의 운명뿐만 아니라 지구와 우주의 운명도 마찬가지이다. 왜 생겨나고 소멸하는지 지구와 우주에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알 수 없다.

내 몸 속에 기생하는 미생물들의 관점에서 보자. 나의 신체는 우리의 우주만큼이나 광대한 것이요 내 작은 기침이 내 몸에 기생하는 무한수의 생명체에게 어떤 재앙일지 알 수 없다. 강에 버린 폐수에 몰살 당하는 고기떼의 운명이나 순식간에 지구에서 멸종한 공룡의 운명이 인간의 운명과 다르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이상한 일은 사람들이 미래나 자연에 대해 지배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고집하고 우리의 삶이 우연성과 불확정성에 의해 지배 받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부인하려는 강한 경향이다. 이런 망각은 오만함을 초래한다. 오만함은 다양성을 부인하고 획일적인 문화를 추구하려는 지배주의의 뿌리가 되어 집단과 이념간의 갈등과 대립을 조장한다. 인간은 자신의 지식을 과도하게 신뢰하여 자신과 다른 생각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관용을 잃고, 지식의 범위 바깥에 있는 예외적 상황에 직면해서는 어찌할 바를 모르는 정신적 무정부 상태에 빠져 정신을 아예 놓아 버리는 정신분열 같은 질병을 유발한다.

세상을 지배하는 크고 작은 인과관계 중에 인간이 알고 이용할 수 있는 인과관계가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또 그 한계가 우연으로 꽉 찬 일상의 가운데에서 얼마나 많이 노출되고 있는지 깨달아야 한다. 인간이 위대한 건 과학과 기술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지식을 수시로 부정하는 우주의 불확정성과 삶의 우연성에 대한 인식에서 오는 겸손함 때문이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는 자연적 사회적 재앙들이 잇따르고 있다. 민족은 달라도 그들과 우리 모두가 똑같이 불완전한 인간이라는 점에서 연민을 느낀다. 재앙에 대비하여 피해를 줄이는 인간의 노력을 강조하는 정도로 교훈을 끝내지 말자. 피해를 줄이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재앙을 통해 우리는 삶의 우연성에 대한 망각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내가 아는 것은 우주의 먼지만한 크기요, 자연과 세상의 더 큰 이치에 겸허하게 순응하는 본질적인 생각들로 마음을 돌리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일본에 사는 나의 친구들이 겪고 있을 고통을 생각하니 가슴이 무거워 진다. 지금은 힘들겠지만 그들이 겪은 재앙은 새로운 정신으로 거듭나 세상에 빛을 안겨 줄지도 모를 일이다.

조성우 영화음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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