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낮 과천 정부청사 인근의 한 식당. 점심식사를 하던 최삼태 한국노총 대변인은 갑자기 걸려온 이용득 위원장의 전화 한 통에 허겁지겁 식사를 마쳤다. 지역순회 중이던 이 위원장이 이날 오전에 발표한 성명서 문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새로 고치도록 지시했기 때문이다. 최 대변인은 부랴부랴 성명서를 손 봐 스마트폰으로 결재를 올렸다. 서울과 지방 곳곳에 흩어져 있던 사무처장, 부위원장, 위원장의 결재를 거쳐 개고(改稿)된 성명서는 2시간 만에 새로 뿌려졌다. 금융노조 출신으로 “노동조합도 시대변화에 빨리빨리 적응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 위원장의 제안으로 이달 초 1,000만원을 들여 간부들의 스마트폰에 장착한 전자결재시스템을 활용한 것이다.
노동조합이 시대에 뒤쳐진 조직이라는 선입관을 불식시키려는 듯 대내외 소통시스템 개선과 이미지 변신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새로운 의사결정시스템, 의사소통도구의 활용이 두드러진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각각 자체 메신저를 사용해 본부와 산하ㆍ지역조직 간에 연락을 취하는데 외부활동이 많은 현장활동가들을 위해 이를 무선 메신저로 업그레이드할 예정이다. 공무원노조는 서울본부와 전국 200여 지부의 간부들이 수시로 화상회의를 진행한다.
대외소통방식의 변화도 엿보인다. 현안과 관련해 양대 노총이 내는 보도자료, 논평 등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를 촉구한다”“~중단하라!”등의 정형화된 격문형식이었지만 최근에는 인터넷라디오방송(한국노총), 동영상 논평(민주노총) 등 온라인세대의 눈높이에 맞춘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지난달 현 정권 출범 3주년을 맞아 나온 민주노총의 동영상논평은 클래식음악을 배경으로 비판적인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담아냈다는 호평을 받았다. 3,600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등 소셜네트워크(SNS)활용도 적극적이다. 지난달 노조간부들을 대상으로 ‘노동운동과 SNS’를 주제로 강의했던 정호희 민주노총 대변인은 4만명의 팔로어를 거느리고 있다.
빨간 머리띠, 빨간 조끼, 등산화로 상징되는 노동운동가의 전형적인 스타일에서 벗어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민주노총 기관지 에는 최근 노동운동 첫인상이 어둡게 보이는 이유를 노동운동가들의 구태의연한 패션으로 꼽고,‘패션좌파’를 백안시할 필요가 없다는 논지의 칼럼이 실리기도 했다. 엄숙주의가 몸에 밴 조직 분위기에서는 이례적이다. 실제로 요즘 민주노총 사무실에서는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 활동가나 귀를 뚫은 남성 활동가들을 볼 수 있다. 지난해 11월 전태일 추모 패션쇼에서 모델로 나서기도 했던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은 “노동운동가들이 싸워 얻어내려는 권리가 일반시민들의 기본권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좀더 친숙하게 알릴 필요가 있다. 노조가 시대의 변화에 따라가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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