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통한 시간여행/프랑크 섀칭 지음ㆍ정재경 오윤희 옮김/영림카디널 발행ㆍ712쪽ㆍ3만원
"녀석은 800m 깊이의 바닥에 흙탕물 구름을 피워 올리며 가 닿았다. 최초로 바다장어가 나타나고 이어서 다른 시체 포식자들도 당도하여, 이 바다의 지배자를 물질의 순환 속으로 돌려보내게 되었다. 그러자 이미 그 육중한 몸집에 생명이라고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너무도 많은 왕들이 있었다"(251쪽).
고래만한 몸집에 상어를 능가하는 절정의 감각과 지능 스피드까지 갖췄다는 지질시대 바다의 제왕 메갈로돈(그리스어로 거대한 이빨이란 의미)의 최후를 프랭크 섀칭은 저렇게 그리고 있다. 해양스릴러 소설 (<변종> 이란 제목으로 연초 국내 출간)의 작가인 섀칭은 이 책에서 137억년 전 원시대폭발로 우주가 탄생한 이래 지구의 숱한 생명들이 피고 지며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긴 시간의 역사를 바다에 초점을 맞춰 들려준다. 변종>
그가 말하는 바다는 심해의 열수분출구에서 최초의 탄소 화합물이 만들어지고, 질소와 초산이 형성시킨 아미노산이 연쇄를 이뤄 펩티드가 되고, 단백질이 되고, 유기화합물이 되고, 원시세포가 탄생하는 그 모든 진화의 고향, 생명의 고향으로서의 바다다.
분류하자면 대중적 자연과학서지만 메갈로돈 이야기처럼 그는 진화의 주역들을 의인화하고 사태의 전개 양상을 드라마틱한 픽션의 한 장면처럼 그린다. 지중해의 역사를 한 여행객의 가상 시간여행 체험담처럼 들려주기도 한다. 그런 방식으로 지질시대 이후의 생명과 대기, 땅의 진화까지 꿰뚫고 나아간다.
작가는 진화를 환경에 따른 불가피한 변화 정도의 의미로 쓰고 있다. 개선이 아니라 적응이라는 뜻이다. 땅이 바다가 되고 바다도 땅이 되듯 그 변화와 적응의 과거 현재 또 미래 지질학적 시간 속에서 인간 역시 고향인 바다로 되돌아가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는 것이고, 피아니스트의 정교한 손이 지느러미로 진화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책에는 인류의 미래일수도 있는 바다의 미래에 대한 현대과학의 개입 양상_심해 탐구활동, 유럽우주기구의 물의 행성 탐색 프로젝트 등_ 도 소개한다. 저자는 황폐해지는 해양 환경과 오염, 생명공동체 파괴라는 절망적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해법도 바다에 있다고 말한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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