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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나는 ΟΟ(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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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나는 ΟΟ(이)다"

입력
2011.03.24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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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를 빚은 MBC TV 프로그램 '우리들의 일밤-나는 가수다'의 담당 PD가 결국 교체됐다. 평가단 판정에 결과적으로 불복, 재도전을 결정했던 가수 김건모도 하차했다. 방송을 시청할 때부터 무엇 때문에 가수들을 서열화하는 이런 서바이벌 쇼를 만들었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 의문과 진행의 불공정 문제가 직결되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나는 가수다'는 초장부터 성공 여부를 가늠할 수 없게 돼 버렸다.

모든 언동은 자기 정체성 선언

그러나 김건모의 말대로 이 프로그램이 참여자와 탈락자들에게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가 된 것은 분명하다. 가수 7명의 노래를 듣고 순위를 매겨 꼴찌를 탈락시키는 데 대해 "가수들을 모욕하는 프로그램"(조영남)이라는 비판에 동의하지만, 자신에 대한 반성과 점검이라는 의미를 건질 수 있다.

사실 가수가 아니라도 사람은 누구나 각자 자기 분야의 무대에서 공연을 하고 오디션을 받으며 살고 있다. 나는 무엇이며, 나는 누구라는 정체성을 선언하고 이를 확인하면서 사는 게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런 정체성은 극적인 계기에 특히 부각돼 공적인 검증을 받게 된다. 요즘 화제의 중심이 된 신정아 씨의 자전 에세이는 어떤 사람들에 대한 오디션인가. 책에 등장함으로써 명예가 실추된 사람들로서는 당연히 억울한 일이겠지만, 아무런 꼬투리나 빌미가 없이 말썽이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일본인들은 3ㆍ11 대지진을 통해 '인류정신의 진화'를 보여준 사람들이라는 검증과 평가를 받았다. '메이와쿠오 가케루나(迷惑を掛けるな)',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는 생활태도가 몸에 밴 일본인들은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을 히진(非人), 사람도 아니라고 부른다고 한다. 고난 속에서도 일본인들은 외국인들로부터 좋은 점수를 땄다.

그러나 호평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진 직후, 일본의 불행에 악의적 논평이나 농담을 하는 것을 천박한 민족감정이라고 비판한 한국일보 사설을 읽고 한 여성이 항의전화를 걸어왔다. 일제의 징용 때문에 아버지 없이 비참하게 자라야 했다는 이 여성은 일본에 대한 원망과 한이 어째서 천박하냐고 따졌다. 일본인들이 정말 안됐지만 (그런 일을 당하는 게) 잘코사니라는 마음을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한 독자는 이메일을 보내 일본인들의 허위와 위선을 지적했다. 자기들끼리는 그렇게 폐를 끼치지 않고 점잔을 빼며 체면을 차리지만,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잔인하고 국가적으로는 남의 땅을 내 땅이라고 우기고 자본주의적 힘의 논리를 앞세우는 아주 위선적인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에 비하면 한국인들은 한 번도 남의 나라를 침범하지 않은 민족이며 남의 어려움을 보면 참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사랑과 관용으로 어떻게든 일본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한국인들의 마음 속에서는 이런 착잡한 쌍곡선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일본인들에 대한 평가는 그들이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재탄생이냐 침몰이냐의 중대 기로에 선 일본은 "인류는 자신의 삶을 나아지게 만드는 굉장한 잠재력이 있다"는 워런 버핏의 말대로 어떻게든 처참한 비극을 딛고 재기할 것이다. 다만 '쓰나미 오디션'을 통과하면서 어떤 일본, 어떤 일본인으로 재기할 것인가는 별도로 살펴야 할 관심사다.

좋은 평가를 늘 받을 수 있다면

개인이든 민족이든 일상의 생업과 활동은 자기 정체성을 쌓아가고 확인하는 과정이다. 최근 방한한 워런 버핏은 돈에 사인해 달라는 한 시민에게 "돈에는 사인하지 않는다"고 거절했고, 허름하고 소박한 옷차림과 식사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나는 여러분이 알고 있는 워런 버핏, 바로 그 사람이오"라는 말을 하고 간 셈이다.

그 사람이 있음으로써 주변이 밝아지고 이 세상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인상이나 평가를 한결같이 받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 세상 살기가 그래서 어려운 것이다.

임철순 주필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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