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능 피폭을 무릅쓴 결사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본 후쿠시마 제1 원자력발전소의 위기가 수그러지지 않고 있다. 이미 주변의 광범위한 지역에서 수돗물과 야채, 바닷물과 토양의 방사능 오염이 확인된 마당에 사태 장기화나 악화에 따른 추가 방사능 누출을 고려하면 앞으로 한동안 방사능 공포가 일본을 짓누를 전망이다. 그런 위기의식은 이미 국내로도 번졌다. 지리적 위치와 지형, 풍향 등을 감안하면 최악의 경우라도 한반도에 미칠 영향은 극히 미미해서 무시해도 좋을 정도라는 전문가들의 줄기찬 설명도 일반인의 우려를 덜지 못하고 있다.
■ 일부 지나치다 싶은 행동도 눈에 띄지만, 위험을 피하려는 본능에 따른 인식과 행동에 눈살을 찌푸릴 일은 아니다. 다만 방사능 오염에 대한 우려와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의문을 방사능 오염 회피책이나 원전 안전성 제고논의로 이어가는 대신 원자력 발전 자체에 대한 무조건적 반대로 끌고 가려는 움직임에는 눈살이 찌푸려진다. 위험을 피하는 최선의 방법이 위험원을 없애는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마루 바닥에 솟은 못은 무조건 빼버려야 한다. 그러나 이익이나 혜택이 위험과 병행할 경우는 둘을 견주어 선택해야지, 무조건 버릴 수는 없다.
■ 원자력 발전은 고도산업사회의 필요 조건이 됐다. 산업국가 가운데 원전에 의존하지 않는 나라는 없다. 대량생산에 필요한 막대한 전기에너지를 만들어 낼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수력 발전은 자연조건의 한계에 부닥치고,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화력발전소는 온실가스 발생의 주범이 된다. 이론상 사하라 사막의 4분의 1만 태양열 판으로 덮어도 전세계의 전력 수요를 충당할 수 있다지만 아직까지 태양열이나 풍력, 조력 등 신재생에너지 활용은 상징적 수준에 머물고 있다. 신재생에너지가 미래의 이상일 수는 있어도 당장의 대안이 되지는 못하고 있다.
■ 위험은 애초에 안전하게 창조되거나 생성되지 않은 지구 위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물의 운명이다. 사회도 다르지 않다. 따라서 위험과 편익을 잘 따져 감수할 수 있는 위험의 정도를 선택하고, 그 위험을 최대한 낮추는 관리 방법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국내 교통사고 사망자가 많이 줄었지만 지난해에도 4,000명 가까웠다. 사고를 당한 사람의 장애나 후유증을 감안하면 그 위험은 원전의 방사능 누출 사고에 따른 피해를 크게 웃돈다. 그런데도 자동차를 없애자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뛰어난 편의성 때문에 용감하게 위험을 선택한 결과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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