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식단 못 외운다고 슬리퍼로 따귀, 빵 5개를 10분 안에 못 먹어서 주먹으로 폭행, 청소 불량으로 철봉 매달리기와 엎드려뻗쳐….'
국가인권위원회가 24일 공개한 경북 포항 해병대 사병들의 가혹행위 피해사례다. 연평도 사건 이후 되레 지원자가 늘어 올 1월 사상 최고의 지원율(4.5대 1)을 기록한 해병대에서 선ㆍ후임 병사간 가혹행위가 마치 전통처럼 행해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인권위는 이날 지난해 12월 해병대 모 연대 소속 사병의 부모가 낸 진정에 따라 이 연대를 직권조사한 가혹행위 실태를 토대로 해군참모총장에게 대대장을 비롯한 직속상관 11명을 징계하고 구체적인 예방 지침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또 해병대사령관에게는 가해자 8명을 재조사, 사법처리 등 적절한 징계조치를 취하고 피해자 7명은 보호조치 하도록 요구했다.
인권위 조사에 따르면 가해자 A병사는 후임병 4명에게 청소불량, 군기 유지 등을 이유로 이층 침상에 매달리게 한 뒤 복부, 가슴 등 온몸을 폭행했다. B병사는 후임병에게 검지와 중지 사이에 볼펜, 가위 등을 끼워 꽉 잡게 한 후 도구를 돌리는 가혹행위를 수시로 해 피해자의 양쪽 검지 관절뼈가 돌출됐다. 또 다른 선임병들은 손바닥과 주먹, 슬리퍼 등 수단을 가리지 않고 폭행했으며, 철봉 매달리기, 엎드려뻗쳐 등의 얼차려도 수시로 강요했다.
음식을 억지로 먹도록 강요하는 군대은어인 '악기바리'도 심각한 수준이었다. C병사는 선임기수와 조리식단 메뉴를 외우지 못한다며 후임병에게 빵 5개를 10분 내 먹으라고 시킨 뒤 먹지 못하자 손바닥, 주먹으로 뺨과 얼굴을 수 차례 때렸다. 밥을 높게 쌓아 짧은 시간 내에 먹도록 강요한 선임병도 있었다.
폭행사건을 상급자에게 발설한 사병은 속칭 '기수열외'라는 모욕적인 보복도 당했다. 위계질서를 무시하고 후임병이 선임인 이 사병을 반말과 함께 폭행하도록 시켜 인격적 수치심을 준 것이다.
행정관 등 직속상관들은 부대 내 가혹행위를 축소ㆍ은폐하거나 늑장 조치한 사실도 드러났다. 피해자 D병사는 폭행으로 다발성 늑골ㆍ흉골 골절 등의 상처를 입고 입원치료를 받았지만 "축구를 하다 다쳤다"고 진술하라는 선임병들의 강요를 받았다. 간부들은 폭행상해 사실을 알고도 사단장에게 보고하지 않은 채 가해자에게 영창 10일의 행정처분만 내렸다. E병사는 폭행 당한 사실을 행정관에게 알렸지만 가해자는 구두 훈계만 받았다. 이후 E병사는 2차 폭행으로 기절해 의무실에 입실한 뒤에야 가해사병에 대한 영창 징계조치가 취해졌다.
이 부대의 2010년 의무대 환자 발생보고서에는 고막천공 30여건, 비골ㆍ늑골 골절, 대퇴부파열 등 타박상 기록이 250여건에 달했지만 발병 경위 등은 부실하게 기록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권위 관계자는 "군인복무규율에 위배되는 부대 내 구타ㆍ가혹행위가 반복적, 관행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지휘감독자들의 관리 부실이 주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해당 사단의 영관급 간부는 "과거보다 병영문화가 많이 개선돼 해병대 전체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며 "인권위 권고사항에 따라 조치를 취하고 재발방지에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김혜경기자 thank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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