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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승 日 리츠메이칸대 교수 26일 국내서 정년 퇴임 기념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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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승 日 리츠메이칸대 교수 26일 국내서 정년 퇴임 기념 강연

입력
2011.03.24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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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승(66) 리츠메이칸(立命館)대 교수의 얼굴에는 질곡이나 형극 같은 수사로 형용할 수 없는 현대사의 고통이 화인(火印)으로 새겨져 있다. 교토(京都)에서 태어난 그는 한일 국교정상화 반대 운동으로 재일동포 사회가 들끓던 1965년 대학에 입학했다. 일본의 68혁명인 전학공투위(전공투)가 불붙던 해 한국 유학 생활을 시작했고, 71년 국가보안법의 올가미에 걸려들어 19년 옥살이를 했다. 수사 과정에서 입은 화상은 한국 정부의 폭압성을 상징하는 자국으로 세계인들의 뇌리에 각인됐다. 출옥 후 학자로서 비교인권법을 강의하며 평화운동에 참여해 온 그가 31일 정년을 맞는다. 퇴임 기념 강연을 위해 방한한 그를 23일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만났다. 강연은 그가 40년 전 모진 고문을 당했던 서울 남산 중앙정보부 자리 서울유스호스텔에서 26일 열린다.

_국가 폭력 피해자의 이미지에 가려 학자로서 연구 성과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

“본래 농촌경제학을 전공했지만 감옥 생활을 하면서 국가 폭력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고, 동아시아의 인권과 평화 문제에 집중하게 됐다. 인권의 보편성이 동아시아의 사회ㆍ역사적 맥락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리고 식민주의 경험이 동아시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밝히는 것이 연구의 주제였다. 나는 인권을 국가 폭력에 대한 대항권으로 해석한다. 그런 인권이 심각하게 위해받는 경우가 식민 지배나 전쟁, 또는 제노사이드(민간인 학살)처럼 개인이 국가 폭력에 노출되는 상황이다. 그래서 인권 문제를 푸는 대전제는 평화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_그렇다면 유엔의 리비아 내전 개입도 옳지 못한 것인가.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의 인권 탄압, 즉 반대세력 학살을 해결하기 위해 결국 군사적 방법(전쟁)이 선택됐는데.

“정당화할 수 없다. 주권국의 내전을 또 다른 전쟁으로 해결하려는 시도는 잘못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카다피가 옳다는 것은 아니고 내전을 방치하자는 얘기도 아니다. 하지만 현재의 내전은 민주주의 혁명이라기보다 부족 간 분쟁의 성격이 강하고, 카다피가 일방적 제노사이드를 자행했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 인도적이라는 기준 자체도 너무 모호하다. 인도주의를 명분 삼아 미국이 리비아에 개입하려면 먼저 이라크나 관타나모에서 그들이 저지른 인권 탄압을 해결해야 한다. 세계 질서의 중심에 있는 국가들이 자신의 의도대로 세계를 끌고 가는 데 인도주의를 내세우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 대답은 의외였다. 독재 정권의 폭력에 젊음을 빼앗긴 서 교수는 인권과 평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역할 증대에 찬성하리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케이스 바이 케이스겠지만”이라는 그의 말꼬투리를 잡고 가정문의 형식으로 다시 질문을 던졌다.

_5ㆍ18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났을 때 유엔이나 미국이 군사적으로 개입해서 전두환 세력을 몰아냈다고 치자. 그것도 정당화할 수 없는가.

“참 어려운 문젠데… 결국 원칙적 대답을 할 수밖에 없다. 어떤 형태든지, 군사적 개입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무력으로 무력을 해결하려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분명한 것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든, 어디든 객관타당한 인도주의를 주장할 입장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6ㆍ25전쟁에서 볼 수 있듯이 결국 유엔도 한쪽의 당사자일 수밖에 없다. 유엔의 이름을 건 연합군이 노근리사건을 비롯해 엄청난 민간인 학살을 저지르지 않았나. 유고 내전 때도 독일이 세르비아를 폭격하며 보호해 준 몬테네그로는 과거 나치에 협력했던 나라다. 자유민주주의와 독재의 싸움으로 단순화할 수 있는 국제 문제, 혹은 인권 문제는 거의 없다. 국가 폭력을 만들어 내는 근원은 소수자의 욕망에 의해 다수의 운명을 결정하려는 시도다. 인도주의를 내세우고 있는 서방국가들도 거기서 자유롭지 못하다. 5ㆍ18에 관해 말하자면 군사적 개입이고 뭐고 할 것 없이 당시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가진 미국이 전두환 세력이 출동하지 못하게 막기만 했어도 되는 것 아니었나.”

서 교수는 일본에서 자이니치(在日)로 지칭되는 재일동포 3세다. 스물 셋에 서울로 유학 오기 전엔 한국어도 몰랐다. 국경과 문명의 경계가 흐릿해진 다문화의 시대에 그가 민족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이 궁금했다.

_전직 일본 총리 부인이 배용준의 팬인 세상인데 굳이 민족 정체성을 고수해야 하는가.

“나도 국적이 의미없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 그런데 아이덴티티라는 것은 남에 의해 타자화할 때 형성되는 것이다. 일본인들이 ‘넌 조선인이잖아’ 그래야 조선인의 아이덴티티가 문제 된다는 얘기다. 내 제자가 간사이(關西) 지방 부동산 150곳을 조사한 적이 있는데 ‘국적이 상관없이 집을 빌려줄 수 있다’고 답한 곳이 2%밖에 안 됐다. 일본은 자신들에게 순응해 흡수되려는 사람에겐 관대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철저히 배┎求?사회다. 또 재일동포가 일본 사회 속에 무조건 융화하라고 강조하면 일본 사회가 져야 할 식민주의의 책임 또한 재일동포가 함께 져야 하는 모순이 생긴다. 이른바 다문화 공생론에 가려 있는 억압과 차별의 구조를 직시해야 할 필요성은 여전히 유효하다.”

_재일동포로서 현재의 한반도 상황을 어떻게 보는가. 오늘(23일)이 천암함 사태가 발생한 지 1년이 되는 날인데.

“나는 천안함 사태의 납득할 만한 원인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고 본다. 현 정부 들어서 남북 문제를 너무 입구론의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 같다.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대화할 수 없다는 자세로는 100년이 가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난 우선 대화부터 하면서 해결점을 찾는 출구론으로 가야 한다고 본다. 강자일수록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현 정부는 그렇지 못한 것 같다. 특히 재일동포에 대해서 닫혀 있다. 중국 동포, 중앙아시아 동포도 받아들이면서 한국 국적을 갖지 않은 일본의 동포는 입국조차 못하게 막고 있지 않은가.”

서 교수는 동아시아 학자와 비정구기구 인사들이 참여하는 동아시아판 더반선언을 9월에 도쿄(東京)에서 채택하는 작업을 주도하고 있다. 더반선언은 2001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차별 철폐를 위한 국제인권회의에서 채택된 것으로 노예제도가 인도주의에 반하는 범죄행위였다고 규정했다.

_선언문에는 어떤 내용을 담을 예정인가.

“더반선언에서는 노예제가 범죄라는 데 대한 국제적 합의를 이뤘지만 식민지 문제에 대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본인들의 의사와 관계 없이 한 민족의 운명을 송두리째 강제로 결정한다는 점에서 식민제도는 노예제 못지 않은 반인륜적 범죄다. 아직 세계에 남아 있는 인종차별과 제노사이드의 근원에는 문명과 야만을 구별하는 식민주의의 잔재가 있다. 동아시아가 반식민주의 담론에 앞장서고, 나아가 선언문이 유엔의 공식 문서로 채택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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