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막는 공적자금 족쇄 "민영화로 승부수"대기업 41곳 중 16곳의 주거래 은행… 기업금융의 최강자영업점 수에 비해 가계부문 경쟁력 약해 소매금융 비중 더 높여야
만약 우리은행에게서 공적자금의 족쇄가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대다수 은행 전문가들은 우리은행의 위상도, 은행권 판도도 지금과는 꽤 달랐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금융의 노하우가 가장 풍부한 은행, 기업금융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은행, 고객 포트폴리오가 가장 잘 짜여진 은행. 하지만 공적자금 투입은행의 한계로 인해 1등으로는 치고 올라갈 수 없는 은행. 한 애널리스트는 "정부소유의 제약 속에서도 지금과 같은 성과를 내는 것은 놀랄 만한 일"이라며 "결국은 우리은행의 경쟁력도 민영화 문제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것이 강점이다
우리은행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균형 잡힌 고객분포. 통상 시중은행들은 가계 대출이 절반 가까이 차지하지만 우리은행은 가계(34.3%) 중소기업(43.5%) 대기업(19.2%) 등 고른 분포를 보이고 있다.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가계부분보다 기업부분의 성장세가 강한 지금 같은 경제회복기엔 기업 금융에 경쟁우위를 갖고 있는 우리은행의 성장률이 타 은행보다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용욱 대우증권 연구원도 "기업대출은 가계대출에 비해 마진율이 높다는 장점과 부실부담이 상대적으로 크다는 단점을 모두 가지고 있다"면서 "하지만 경기회복기에는 기업대출 비중이 높은 우리은행의 실적회복속도가 상대적으로 빠를 수 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특히 주목할 곳은 수십 년 거래관계를 맺고 있는 우리은행의 대형 기업고객들. 실제로 국내 41개 대기업 가운데 삼성 LG 포스코 등 16곳이 우리은행의 주거래다. 타 시중은행들이 2~4개 정도의 주거래 대기업을 보유한 것에 비하면 엄청난 자산이 아닐 수 없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대기업 거래는 가계나 중소기업에 비해 관리비용이 적게 드는데다 우량고객군인 임직원들을 한꺼번에 고객으로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며 "이것이야 말로 우리은행의 가장 확실한 저력"이라고 말했다.
고객군의 충성도도 높은 편. 우리은행의 주고객은 과거 상업ㆍ한일은행 시절부터 거래해 오던 장기고객들로, 웬만해서는 거래은행을 바꾸지 않은 성향을 가졌다. 실제 우리은행은 시중은행 중 유일하게 충성고객 관리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는데 ▦명사클럽(개인 고객) ▦비즈니스클럽(중소기업 CEO) ▦다이아몬드 클럽(대기업 고객) 등으로 분류해 별도 관리를 하고 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지난해 우리금융이 자체 민영화를 위해 투자금을 모았을 때 이들 충성고객군으로부터 단숨에 수조원이 모급됐다"면서 "이들은 단순 우량 고객이 아니라 우리은행 주주에 가까울 정도의 충성도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 구조조정 분야에서 독보적인 노하우도 큰 강점이다. 타 은행에 비해 기업고객이 많다 보니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때 부실기업이 많이 발생했고, 자연히 워크아웃 등 기업구조조정작업을 많이 하게 된 결과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기업구조조정은 경험과 노하우 없이는 불가능한 작업"이라며 "타 은행 뿐 아니라 금융당국도 자문을 구할 정도로 이 분야에서 우리은행의 역량은 독보적이다"고 말했다.
이것을 고쳐야 한다
타 은행이 따라올 수 없는 자산을 가졌음에도 불구, 우리은행이 1등 은행으로 도약하지 못하는 이유는 결국 공적자금 때문이다. 유상호 연구원은 "우리은행은 현재 대주주인 예금보험공사와 매 분기 경영이행약정(MOU)을 맺고 이를 달성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며 "장기적 비전을 세울 수 없어 시중은행과 제대로 된 경쟁을 할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정부가 주주권을 행사하다 보니 현 이팔성 지주회장 이전까지는 CEO도 3년마다 바뀌었다. 잦은 경영진교체는 경영전략이 자주 바뀌고, 결국 단기성과에 치울 수 밖에 없다는 의미다. 우리은행 관계자도 "민영화 없이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근본적 한계가 있다"고 인정했다.
순수 경영요소로는 자산건전성 개선이 시급한 과제다. 우리은행의 고정이하 여신 비율은 지난해 말 현재 3.2%. 국민(1.74%) 신한(1.31%) 하나(1.50%) 기업(1.83%) 등 경쟁 은행보다 월등히 높다. 이에 비해 만약에 대비한 대손충당금 적립비율도 업계 최저여서 리스크에 여전히 취약한 구조를 안고 있다는 지적이다.
기업 고객 중 부실 위험이 높은 건설과 조선업의 비중이 타행에 비해 큰 것도 약점으로 지적됐다. 경기가 좋으면 큰 문제가 없지만 경기가 하강으로 접어들면 손실이 눈덩이처럼 커지는 문제를 안고 있다는 의미다.
구용욱 연구원은 "전체 포트폴리오 구성은 좋지만 영업점 수에 비해 가계부문 경쟁력이 약한 것도 흠"이라며 "주고객인 대기업들이 돈을 빌리지 않는 상황에서 수익을 다변화를 위해서는 주택담보대출을 제외한 소매금융의 경쟁력을 더 키울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손재언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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