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발전소는 비리 위에 세워진 바벨탑이다. 초기부터 지금까지 원전 공사 때마다 수주 및 편의의 대가로 뇌물을 화끈하게 먹고 먹였다는 의혹이 끊이질 않았다. 몇몇은 삐죽 그 실체를 드러내기도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취임과 함께 6공 비리 수사에 화력을 집중했다. 검찰의 칼날이 전 정권 실세들과 재벌들에게 겨눠져 사정 공포 지수를 한껏 높이더니 1994년에는 마침내 한국전력 원전 비리 사건이 터졌다. 수사를 통해 안병화(전 상공부 장관) 전 한전 사장이 91년 10월부터 다음 해 10월까지 한전이 발주한 원전 공사와 관련, 사례비 및 시공상 편의비 등 명목으로 4개 유수 기업들로부터 9억원의 뇌물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기업들이 이렇게 뇌물을 주면서 원전을 제대로 지었을 리는 없어 보인다. 뇌물 줄 돈을 마련하기 위해 공사 비용을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 정도 규모는 아니지만 2001년에도 원전 공사 비리가 터졌다. 원전 유지ㆍ보수 공사를 시행하는 공기업인 한전기공의 고리2사업소 소장과 팀장 2명이 고리원전3, 4호기의 유지 및 보수 공사를 하면서 하도급 업체 6곳과 짜고 모두 19회에 걸쳐 공사를 허위로 발주하거나 공사비를 과다 계상한 뒤 하도급 업체에게 공사비로 지급하고는 리베이트 명목으로 모두 1억4,237만원을 되돌려 받은 사건이었다. 이들이 허위 발주한 공사 4건는 원전 강호돔 강화 등 원전 안전과 직결되는 것들이었다. 이 공사들은 원래 전문가에게 맡기도록 돼 있으나 이들은 허위 발주로 그렇게 한 것처럼 꾸민 뒤 용역원 등에게 일을 시켰다.
지난해에도 신울진1, 2호기 건설 공사 추진 과정에서 전 한국수력원자력 신울진건설소 소장과 차장 2명, 팀장 1명이 가짜 세금계산서를 이용해 판공비 2억1,000만원을 횡령한 사건이 있었다. 물론 원전 안전을 해친 사건은 아니지만 원전 공사 과정에서 돈을 횡령하는 게 얼마나 쉬운지 보여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일본 후쿠시마(福島)원전들이 도호쿠(東北)대지진으로 허망하게 허물어지자 한국 원전 담당자들이 가장 먼저 한 얘기는 "우리는 다르다"는 것이었다. 한국 원전은 전기 공급이 끊겼을 때 비상디젤발전기(EDG) 대체교류전원(AAC) 등이 이중삼중으로 받치고 있으며, 역대 지진 강도 등을 고려해 규모 6.5의 지진에 견딜 수 있도록 지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쓰나미가 이 정도로 높게 밀려와 EDG 등에 물이 찰 거라는 생각은 평상시에 전혀 해 보지 못했다"는 한 공무원의 고백이나 "역대 지진을 감안해 원전을 지었다는데 한국에서의 지진 관측 역사는 수십 년에 불과하고 근대 이전 역사 기록을 보면 규모 7 이상의 지진이 일어난 적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환경 전문가들의 얘기를 들으면 도대체 믿음이 안 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내로라하는 국내 최고의 전문가들 장담이니 믿을 수밖에. 그러나 이를 다 믿는다 해도 결정적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바로 원전이 비리 위에 건설됐다는 점이다. 비리로 제 돈 안 들이고 만들거나 관리하는 원전은 부실할 수밖에 없는데 이런 부분은 원전 당국이 예상하지 못하는 안전 위협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원전 당국은 23일부터 원전 전체에 대한 종합 점검을 시작했다. 일본 원전이 이렇게 문제를 일으킨 상황에서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번 점검에서 반드시 해야 할 것이 있다. 지금까지 주요 계약서를 전부 꺼내 놓고 비리가 없었는지, 있었다면 이 때문에 부실하게 이뤄진 공사는 없는지 면밀하게 보는 것이다.
이은호 문화부장 leeeun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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