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의 최후 보루인 수도 트리폴리의 기류가 변하고 있는 듯하다. 카다피는 일주일 만에 나타나 여전히 건재를 과시했지만, 최고 지도자를 죽음으로 지키겠다던 결사 대오에는 금이 가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카다피 측이 '출구전략'을 고민하고 있다는 분석도 조심스레 제기된다. 유엔 결의에 따른 연합군의 공습 효과 때문이다.
카다피는 22일(현지시간) 리비아 국영TV에 등장했다.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건 16일 레바논 언론과의 인터뷰 뒤 꼭 일주일 만이다. 이틀 전 토마호크 크루즈 미사일이 떨어졌던 자신의 은둔지, 바브 알 아지지야 요새에서였다. 연합군의 군사개입이 본격화한 이후 행방이 묘연했던 그는 인간방패로 나선 지지자들 앞에서 거듭 항전의지를 다졌다. 특유의 거친 말투와 몸짓 역시 그대로였다.
카다피는 생중계라고 주장된 연설에서 "싸움이 길어지든 짧게 끝나든 우리는 그들(연합군)을 무찌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습을 의식해 피신했다는 관측을 불식시키려는 듯 "나는 여기에 있다. 내 집은 이곳이고, 나는 텐트에 머무르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리비아를 공격하는 서방 국가들을 정의에 어긋난 파시스트로 몰아붙이며 "부당한 공격에 대항하는 시위가 리비아 전역에서 열리고 있다"고 했다.
과연 그럴까. 미 뉴욕타임스(NYT)는 카다피의 호언장담과 달리 동요하는 트리폴리의 분위기를 전했다. 지난 한달여간 친ㆍ반정부 세력의 물고 물리는 교전 속에서도 트리폴리만은 반정부 시위의 무풍지대나 다름 없었다. 이날도 녹색 스카프를 두른 수천명의 카다피 추종자들은 그에게 열광적인 환호를 보냈다.
하지만 한 시민은 "솔직히 굉장한 두려움을 느낀다. 카다피 군대는 내 친척들을 포함해 트리폴리에서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고 말했다. 중앙은행 앞에 새로운 방어 진지를 구축한 한 경호원은 "정부가 수많은 시민들을 무장시킨 탓에 은행을 보호해야 한다"고 했다. 나눠준 무기들로 혹여 카다피나 은행 등 공공시설을 노릴지도 모른다는 우려에서다.
미국도 카다피 측이 위기를 타개할 묘수를 찾고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이날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카다피 측근들이 세계 각국의 동맹들과 접촉해 현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출구전략과 향후 정세 등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카다피가 늘 그래왔듯 그런 접촉은 여러 국가에 서로 다른 메시지를 보내 게임을 벌이는 기만 전술일 수 있다"며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정전을 선언하고도 돌연 벵가지로 진격해 뒤통수를 친 것이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상대로 선전전을 펼친 사례에서 보듯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보려는 꼼수라는 얘기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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