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척박한 기업생태계를 줄곧 비판해온 안철수 카이스트 석좌교수가 일상화한 대ㆍ중소기업의 불공정 거래관행을 '동물원 세계'에 비유했다. 중견언론인 모임인 관훈클럽 초청포럼에서다. 안철수연구소의 설립자로서 쌓아온 명성과 경험에 비춰 그의 발언은 어느 누구의 말보다 가슴에 와 닿는다. 정책당국자나 대기업 총수들은 책상머리에서 동반성장을 강조하기에 앞서 그의 생생한 얘기에 귀 기울일 필요가 크다.
발언의 요지는 이렇다. 한국의 중소기업이나 신생업체는 삼성 현대차 LG SK 등 대기업에 납품하려면 울며 겨자 먹기로 독점계약을 맺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순간 '삼성동물원''LG동물원'에 갇히고 결국 죽거나 미이라가 돼야만 거기서 빠져나갈 수 있다…. 그는 구조적 불공정 관행의 사례로 소프트웨어 산업을 꼽으며 "대기업 소속 시스템통합(SI)업체들이 중소기업에 (불공정) 하청을 주는 식으로 시장이 형성되다 보니 중소기업과 산업인력이 성장하지 못하고 국가경제는 악순환에 빠진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중소기업은 국가경제의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해 위험을 줄이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역할을 하지만 지금 한국에선 중소기업의 씨가 말라가고 있다고 경고하며 중견기업(종업원 300~999명) 비중 역시 0.2%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시장 감시 당국의 역할과 대기업 총수의 의지에도 의문을 표시했다. 공정거래위에 제소되는 건수의 10배, 100배나 되는 불법적인 일들이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는데도 공정위가 고발권을 행사하는 경우는 극소수이고, 대기업 구매담당 조직의 인사시스템 혁신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안 교수의 얘기는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휴맥스의 변대규 사장과 함께 "1970년대 이후 대기업으로 성장한 중소기업을 찾기 어렵다"고 누차 개탄해온 까닭이다. 특혜와 이권으로 성장한 재벌들이 어른답게 기업 생태계의 번성을 이끌기는커녕 씨를 말리는 착취적 행태를 계속해왔다는 것이다. 정부와 대기업은 섭섭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국민의 평균적 인식임을 깨닫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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