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째 소통이 시대 화두라는 것에 다수가 공감하고 있지만, 소통이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집단문화가 더 강화되고 있다는 느낌마저 있다. 정치권을 보자. 얼마 전 국회가 졸속으로 처리하려던 정치법 개정안의 경우, 정치인들은 지금의 정치자금법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데 공감하고 여야 구분 없이 법개정을 서둘렀다. 그 결과 국민의 호된 비판이 이어졌다.
원칙과 절차 쉽게 무시
전문가들을 통한 여론 조성이나 국민을 설득해야 할 필요성을 간과한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들 집단에서 충분한 공감대가 있으면 그것이 옳다고 믿는 집단사고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집단사고가 강해지면 관계된 다른 집단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제도적 절차도 무시되기 쉽다. 한 집단에 속한 구성원들이 공감한다면 눈에 뻔히 보이는 기본적 가치도 무시된다.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각 정당은 누구를 내세워야 선거에 승리할 수 있는지에만 골몰할 뿐, 자기 정당의 정체성을 대표할 후보를 찾겠다는 의지는 전무하다. 국민들 눈에는 한때 비난의 대상이었던 후보를 앞세우겠다는 것이 부자연스러워 보이지만, 선거 승리라는 눈 앞의 목표에 몰입한 정당들은 개의치 않고 그들 내부의 가치에만 몰입해 있다.
선거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서 한나라당은 아직도 계파 싸움에서 벗어나지 못해 분당을 지역의 후보 공천은 고사하고 공천 방식마저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야당 역시 단일화가 다음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방책이라는 명분하에 수년 전 이념적 차이를 명분으로 갈라섰던 정치인들이 정당 통합이나 연대를 모색하고 있다. 정치인 집단에게 유권자는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표를 얻어야 할 수단으로 비칠 뿐, 그들이 당내 권력투쟁이나 공천과정의 불협화음을 목도하고 있다는 것을 별로 부담스러워 하지 않고 있다. 정치인들은 여의도 정치에 함몰되어 정치를 바라보는 국민들이 있다는 것을 잊고 있는 것이다.
사회에도 집단사고가 팽배하고 있다. 한때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다른 집단들과 소통이 활발해져서 이질적인 집단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되고 사회 갈등이 줄어들 것이라 기대했다. 그런데 인터넷 토론방을 보면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수렴되기는커녕, 다수와 다른 의견을 내면 무시되는 정도가 아니라 뭇매를 맞고 쫓겨나기 십상이다. 결국 인터넷의 다수 토론방은 구성원들에게 집단사고를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면서, 다른 집단과의 적대성을 높이고 있다.
요 며칠 새 많은 사람들이 화제거리로 삼는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은 집단사고가 작동하는 좋은 사례를 보여준다. 본래 취지가 무엇이든 시청자들에게 이 프로그램은 가수들끼리 살아남기 경쟁으로 인식되었고, 따라서 시청자들은 과연 누가 탈락할 것인가에 큰 호기심을 느꼈다. 누가 탈락되든 당사자뿐만 아니라 시청자들에게도 마음에 부담이 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김건모가 탈락 대상이 되자 집단사고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김건모 탈락’에 객관성 잃어
누가 그 선봉에 있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일단 전체 분위기가 탈락에 불복하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히면서 그 누구도 이 프로그램의 기본원칙을 다시 제기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 이후 참석자들은 모두 진심으로 김건모의 탈락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때부터는 시청자가 그 프로그램을 보고 있다는 것은 의식하지도 않고 중요한 것도 아닌 황당한 상태로 변질되어 버렸다.
이처럼 집단사고가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면 개인들은 집단의사에 묻혀버리고, 객관성이나 타당성은 뒷전에 놓이게 된다. 이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이 평상시 소통이며, 원칙에 충실한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다. 다른 집단과 상시적으로 소통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 번 새겨볼 때이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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