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사회에서는 '갤러리맨'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갤러리맨(gallery man)이란 주인의식이 희박하고 일에 몰두하지 않는 직장인을 골프 경기의 관객인 갤러리에 비유한 신조어. '갤러리(Gllery)'와 '샐러리맨(Salleryman)'의 합성어이다. 과거에 갤러리맨은 50대 이상의 일부 직장인 사이에서만 나타났으나, 최근에는 20~30대 사이에서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갤러리맨이 늘어나게 된 것은 무엇보다 평생직장 신화가 깨지면서부터다. 기업이 종업원들의 인생을 책임지는, 평생고용이 보장되던 시절에는 직원들의 운명이 곧 회사의 운명이었다. 따라서 당시에는 주인의식을 가지고 회사에 충성하는 직원들이 많았다.
그들은 자기 직장에 강한 소속감을 느끼면서 그 직장을 한 평생을 의탁할 공동체로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효율성과 이윤 극대화를 위해 가차 없는 구조조정이 도입되고 그에 따라 직장동료들 사이의 경쟁이 격화되자 이런 태도는 근본적으로 뒤집어졌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회사의 운명에는 별 관심이 없고, 그저 개인의 이익만을 우선시하게 되었던 것이다.
갤러리맨이 늘어나게 된 것은 또한 살아남기가 직장인들의 최고목표가 되었기 때문이다.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하기가 점차 어려워지고, 설사 승리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위해 너무나 많은 희생을 치러야 한다면 혹은 도전에 실패했을 때의 후유증이 끔찍할 정도로 크다면 가만히 있으면서 살아남는 게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처럼 애써서 튀다가 괜히 '피박'을 쓸 필요가 없다는 신념이 굳어지는 것이다.
날로 높아지는 퇴직에 대한 불안감 역시 이런 심리를 부채질한다. 그렇기 때문에 갤러리맨은 도전이나 승진을 통해 성취감을 느끼거나 자아실현을 하겠다는 수준 높은 꿈 따위는 꾸지 않는다. 그들은 그야말로 골프장의 관중들처럼 회사 일을 수수방관하면서 오로지 몸보신에만 치중하다가, 자기한테 유리한 기회가 생기면 주저 없이 이직을 해버린다.
최근에는 직장에서 아무에게도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숨을 죽이고 있는 사람을 뜻하는 '암반수'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비록 세상이 강요한 측면이 많기는 하지만, 갤러리맨이나 암반수 같은 삶이란 세상에 도전하기는커녕 적응조차 제대로 못하면서 생존과 방어에만 급급한 현실도피자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정신병을 현실도피로 보았던 프로이트를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도전과 공격이 아닌 도피와 방어로 일관한 삶은 필연적으로 정신건강을 악화시킨다. 또한 갤러리맨과 암반수의 증가는 안 그래도 개인주의적인 직장문화를 한층 더 심화시킨다. 갤러리맨과 암반수는 타인을 이기려고 아등바등 살아가지 않는 그런 수준이 아니라 아예 남들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지하 깊이 숨어있는 암반수처럼 자기가 무사히 살아남는 문제에만 모든 안테나를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갤러리맨과 암반수의 양산은 기업활동 나아가 한국경제에도 악영향을 준다. 한국사회가 어떻게 하면 직장인들이 주인의식을 되찾을 수 있을지를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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