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연합군의 리비아 공습을 둘러싸고 유엔 결의안이 인용한'R2P'개념이 논란되고 있다. 보호책임(Responsibility to Protect)을 뜻하는 R2P는 국가 주권이 단순히 영토와 국민을 지배하는 권리가 아니라,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책임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이를 토대로 주권국가가 자국민을 보호할 능력이나 의지가 없어 집단학살 전쟁범죄 인종청소 인권유린 등 반인륜적 범죄가 자행되는 경우, 국제 사회는 개입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최후 수단으로 필요하면 무력 개입도 해야 한다는 규범적 개념이다.
■ 리비아 영공의 비행금지구역 설정 등 민간인 보호를 위한 모든 조치를 승인한 안보리 결의안은 R2P 개념을 처음 적용했다. 그래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필두로 많은 이들이 획기적 진전이라고 반겼다. 그러나 서구 연합군은 반정부세력 거점을 압박하는 정부군뿐 아니라 수도 트리폴리의 카다피 관저와 지휘소를 집중 타격,"민간인 보호 차원을 넘어섰다"는 비판이 거세다. 게다가 오바마 미 대통령 등 각국 지도자들과 군 지휘부가 '전쟁 목표'를 놓고 엇갈린 발언을 거듭하는 바람에 어지러운 논쟁으로 번졌다. 명분과 실질의 괴리가 너무 큰 탓이다.
■ R2P 개념은 집단학살과 인종청소가 자행된 르완다와 코소보 사태 등에서 국제사회가 인도주의적 개입(Humanitarian Intervention)에 실패했다는 반성에서 나왔다. 당시 유엔 사무총장 코피 아난은 내전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국제적 합의나 기준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고, 캐나다 정부가 조직한 국제위원회가 2001년 R2P 개념을 제시했다. 핵심은 인도적 개입의 기준과 범위 등을 분명하게 정하고, 군사적 수단보다는 정치ㆍ경제ㆍ사회적 수단으로 인권유린과 대량살상의 근원을 치유하는 것이다. 또 최후의 무력 개입에 앞서 외교적 조치를 다한다는 것이다.
■ 2005년 출범한 아프리카연합(AU)은 R2P를 주된 목표로 선언, 유엔 총회가 공식 채택하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주권국가에 대한 무력 개입을 권리라고 주장하든 책임으로 규정하든, 그 기준과 행동강령이 모호하기는 마찬가지다. 리비아 내전 상황에서도 카다피 군이 집단학살 등 반인륜 범죄로 규정할 만한 잔혹행위를 저질렀는지 분명치 않다. 반군 거점 벵가지를 점령하면 50만 명을 학살할 것이라는 경고도 벵가지 인구가 60만 남짓한 점에 비춰 과장됐다. 혁명과 전쟁은 늘 고상한 명분보다 복잡한 정치적 맥락을 살펴야 한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