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선거는 처음 본다. 정말 희한하고 이상한 선거다."
한 중진 의원은 4 ∙27 재보선을 한달 가량 앞두고 여야 내부에서 심각한 이전투구가 벌어지는 현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여야 지도부의 상당수 인사들이 상대 정당과의 대결에 신경을 쓰기 보다는 내부의 경쟁자를 흔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 여야 대결보다는 여여(與與) 싸움과 야야(野野) 싸움에 더 관심을 쏟는 양상이다.
한 전문가는 "재보선 이후의 당권 경쟁, 내년 4월 총선과 대선후보 경선을 앞두고 당내에서 주도권을 잡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이 같은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나라당의 경우 지도부 일부가 같은 당의 유력 후보를 거침없이 비판하는가 하면, 내부 경쟁자를 쓰러뜨리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부에서는 "여권 체제를 정비하려면 차라리 이번 재보선에서 완패하는 게 낫다"는 주장도 나온다. 민주당에서도 손학규 대표의 경기 성남 분당을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 문제를 놓고 계파간 감정 싸움이 가열되고 있다.
주류 측은 "손 대표 출마 주장은 대표 흔들기 시도"라고 의심하고 있다. 또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은 야권후보 단일화 문제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정녹용기자 ltrees@hk.co.kr
한나라 "당 쇄신 전기 삼아 총선·대선 준비" 확산
"결과 좋으면 걱정" 주장… "혼란 후폭풍" 반론도
4월 27일 치러지는 재보궐 선거를 앞둔 요즘 한나라당에서는 "이번 선거에서는 차라리 완패하는 게 더 낫다"는 '재보선 완패 기대론'이 확산되고 있다. 당 일각에서만 떠도는 얘기가 아니다. 당 지도부의 일부 인사들도 공공연히 이런 주장을 한다.
어찌 보면 희한한 일이다. 크든 작든, 선거를 앞두고는 '어떻게든 이기고 보자'는 공감대가 지도부는 물론이고 당 구성원 사이에 형성되는 게 정상적인 정당의 모습이다. 하지만 이번 선거를 앞둔 한나라당의 모습은 딴판이다.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선거에 지는 게 낫다"는 주장이 번지고 있다. "여권이 이번에 박살이 나서 여권 체제를 정비하고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을 바꿔야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희망이 보인다"는 논리다. 특히 내년 총선 위기감이 큰 수도권 의원들 사이에 이 같은 주장이 많다. 당내에서 재보선 승리에 매달리는 사람들은 안상수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 몇 명뿐이라는 얘기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나라당의 한 최고위원은 24일 "이번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은 완패해야 한다"며 "한나라당 입장에서는 이번 재보선 패배를 약으로 삼아 내년 총선과 대선을 준비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홍준표 최고위원도 이날 CBS라디오에 출연, 이번 재보선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거론되는 정운찬 전 총리와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 김태호 전 경남지사를 싸잡아 비판한 뒤 "이번 재보선에서 실패하더라도 내년 총선과 대선의 밑거름으로 삼으면 되지, 원칙 없는 공천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과거 실패했던, 또 스캔들로 낙마했던 사람들을 끌어들여 당을 잡탕으로 만들어서는 국민으로부터 호응을 받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홍 최고위원은 전날 한 강연에서는 "재보선 결과가 의외로 좋게 나오면 오히려 걱정"이라며 "전혀 쇄신하지 않고 '이대로'를 외치다가 지난해 지방선거와 같은 결과가 (내년 총선에서)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확산하는 재보선 완패론은 재보선 이후 여권 쇄신론과 맞닿아 있다. 수도권의 한 초선의원은 "이번 선거에 대패해야 당 지도부를 바꾸고 국정운영 쇄신을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수도권 초선 의원은 "한나라당이 어쩌다 승리할 경우 현재의 지도체제가 유지되는 빌미가 될 수 있다"면서 "재보선 승리는 환부를 그대로 두고 진통제만 맞는 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재보선에 패배하게 되면 여당이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지고 정권 후반기 레임덕이 가속화해 오히려 내년 총선 등에 더 심각한 악영향을 끼칠 것이란 반론도 있다.
수도권 한 초선 의원은 "선거에 패할 경우 책임론을 놓고 당청 갈등이 벌어지고, 집권 후반기 정국이 극도로 혼미해질 수밖에 없다"며 "선거는 무조건 이기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핵심 당직자는 "재보선 완패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 추구라는 관점에서만 정국을 바라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동훈기자 dh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