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형씨를 두고 대학로의 스타 연출가라 하는 것은 뉴스가 아니다. 1999년 ‘청춘 예찬’을 시작으로 ‘너무 놀라지 마라’ 등 최근작까지 평단의 평과 객석의 반응은 연극성과 흥행성을 겸비한 연출가라는 명세표를 붙이는 데 조금의 모자람도 없다. 신임 김철리 극단장 체제로 새 출발하는 서울시극단은 이번에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그에게 맡기며 한술 더 떠 “우리 시대 최고의 연출가”라고 상찬했다.
“원작의 깊이와 난해함, 장황함 등 복잡한 요소를 우리 시대에 맞게 다듬는 한편, 암전 없이 햄릿이란 인물에 집중해 ‘햄릿’을 100분 안에 무대화할 겁니다.” ‘햄릿, Hamlet’이라고 제목부터 바꾼 박씨의 말이다.
김철리 극단장을 비롯, 이 극단의 단원 모두가 첫 작품의 주재자로 그를 꼽았다. 영국 군대 이야기 등 원작 속의 미시적 상황을 걷어내고 오로지 배우들의 에너지만으로 승부 걸었던 3년 전 접근 방식이 새로이 출발하는 김 단장 체제에 대한 미학적 천명으로 손색없다고 본 때문이다. 그는 2008년 정진수씨 번역본을 근거로 자신의 극단 골목길을 통해 이 작품을 무대에 올렸었다.
공연을 앞두고 가장 긴장하는 사람은 아무래도 타이틀롤이다. 강신구(42)가 신경 쓰는 것은 연출가 박씨의 명성 때문만은 아니다. 지난해 박씨가 연출한 ‘마라 사드’에서 사드역으로 분했던 만큼 친근한 연출자다. 그러나 이번의 ‘햄릿’은 박씨가 원작의 단락들을 모두 뒤바꿔 이 작품의 관습적 기시감을 완전히 비틀어 놓아 배우에게 집중과 긴장을 요한다.
실제 이번 무대는 대사는 똑같지만 순서는 전혀 다르다. 어머니와 삼촌이 결혼 소식_햄릿의 절망과 분노_선친의 유령 등장_오필리어와 오빠_유령 장면_오필리어와 아버지 폴로니어스_새 왕과 왕비_햄릿과 폴로니어스_햄릿과 친구들_무대 준비 등의 순서다. 음산한 도입부 때문에 스릴러 같았단 원작이 감정선 중심으로 변화한 것을 알 수 있다. 앞 부분에 있던“사느냐 죽느냐” 독백은 말미 부분에 배치돼 있다.
박씨는 “중극장이 주는 공간감에 초점을 맞추면서 보다 우리 시대에 밀착하는 언어로 계속 살을 붙여 가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마지막 날까지 박씨의 대본은 메모로 가득 차 있을 전망이다. 이창직 서경화 최나라 등 출연. 4월 8~24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02)399_1114~6
장병욱기자 aj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