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김모(51ㆍ여)씨는 최근 비데 렌탈비가 할인되는 한 신용카드(연회비 5,000원)를 신청하면서 울며 겨자먹기로 '개인정보 제공ㆍ이용 동의서'에 사인을 했다. 동의를 하면 보험 항공 골프장 등 수많은 업체가 김씨의 개인정보를 활용할 수 있도록 돼 있어 거부하려고 했지만 카드사는 "그러면 해당 카드를 발급해줄 수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약관에 '동의하지 않아도 금융거래과정에 불이익이 없다'고 돼 있다고 항변했지만, 같은 답변만 돌아올 뿐이었다.
현재 카드사가 요구하는 고객정보활용 동의서는 동의서가 아니다. 사실상 '강요서'나 마찬가지다. 금융감독원 지침에 따라 계약서에서 소비자가 동의하는 항목이 ▦카드거래 등 본 거래와 ▦마케팅 목적을 위한 정보제공으로 나뉘고 ▦마케팅 활용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카드사가 금융거래를 거부하지 못한다는 내용도 분명히 명시돼 있지만 이를 지키는 카드사는 전무한 실정이다.
24일 카드업계에 따르면 롯데와 하나SK카드 등 후발카드사들은 소비자가 인터넷으로 신용카드를 신청 때, 개인정보 활용 동의란에 체크하지 않으면 아예 다음 발급단계로 넘어가지 않도록 해 놓았다. 업계 선두주자들인 신한 현대 KB국민카드 등도 '개인정보 활용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결제만 되는 기본카드로 대체 발급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주민등록번호와 월소득, 주택 소유 정보, 직업 등 개인의 소중하고 예민한 정보를 내놓지 않으면, 당초 원했던 카드는 발급받을 수 없다는 얘기다.
도대체 카드사들이 소비자들의 항의와 금융당국의 지침마저 어겨가며 이토록 개인정보에 집착하며 배짱을 부리는 이유는 뭘까.
카드사들은 이에 대해 고객별 맞춤 혜택을 주려면 제휴업체에 관련 정보를 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카드사와 제휴업체는 고객정보 공유를 전제로 부가서비스 비용을 분담하고 있기 때문에 개인 정보 확보가 중요하다"면서 "현재로선 고객이 원하는 제휴사에만 정보를 주도록 선택적 동의를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대부분 카드사들이 신용판매 외에 할부금융이나 보험, 여행, 통신판매 등 부대사업을 함께 하고 있다"면서 "고객의 개인 정보를 바로 이런 관련 사업에 활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객정보 활용동의서에 카드 서비스에 필요한 제휴회사뿐만 아니라 자사의 판촉 마케팅을 돕는 회사들의 목록을 함께 끼워 넣고, 고객들이 동의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어쨌든 고객 입장에선 원하는 카드를 발급받으려면 좋든 싫든 정보이용 활용에 동의를 해야 하는데, 그 때부터 엄청난 스팸메일과 광고문자메시지에 시달려야 한다. 나아가 불법적 목적으로 악용될 지도 모른다. 카드발급 때 개인정보활용 동의서에 사인을 한 후 수십통의 스팸메일에 시달리고 있다는 직장인 이모(32)씨는 "연회비(5,000원)가 싸 혜택도 별로 없는데 내 신상정보는 카드사와 제휴업체가 노골적으로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다"며 "'신상털기'(불특정 다수에게 개인정보가 무차별 공개된다는 뜻의 인터넷 용어)와 다를 게 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 같은 소비자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금융감독원도 상반기 중 카드사 전체를 상대로 실태점검에 나서기로 했다. 아울러 개인정보 수집 동의 항목을 ▦본거래 ▦신청카드에 해당되는 제휴사 ▦그 외 카드사의 제휴ㆍ관계사 등으로 세분화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금융감독원 관게자는 "현행법상 카드사의 고객 정보 남용을 근절시킬 수 있는 수단이 없다"면서 "행정지도 수준에서 해결되지 않을 경우 제재 근거조항을 마련하는 방안도 심각하게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강아름 기자 s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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