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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상욱 기자, 후쿠시마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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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상욱 기자, 후쿠시마를 가다

입력
2011.03.21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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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비탄의 땅에 남은 교민들 속울음 삼키며 "힘내" 서로 격려"삶의 터전 떠날순 없어" 위험지역서 힘겨운 나날"아들 아파" "기름 떨어져" 민단에 도움요청 빗발도센다이 돌아와 피폭 검사

21일 오후 기자는 센다이(仙台)를 떠나 후쿠시마(福島)로 들어갔다. 한 통의 전화 때문이었다. 후쿠시마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 정상문 사무국장은 "여전히 교민들이 머물고 있다"고 했다. 믿기지가 않았다.

방사능의 공포가 짓누르는 땅. 두렵고, 망설여졌다. 정 국장이 있는 고리야마(郡山)시는 폭발한 후쿠시마 원전으로부터 60㎞ 떨어진 곳이다. 우리나라 정부가 대피하라고 권고한 지점(원전 반경 80㎞)보다 20㎞나 안쪽에 위치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 국장이 전화기 너머로 전하는 사연은 기자를 현장으로 이끌었다. 도호쿠(東北)대학병원에 물었다. 병원 관계자는 "위험지역인 30㎞ 내로는 절대 접근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2시간 이상 머물지 말 것, 복귀하는 즉시 피폭 검사를 받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센다이에서 2시간 만에 닿은 고리야마의 첫인상은 놀랍게도 '평온'이었다. 몇몇 음식점과 상점은 문을 열고 있었다. 모두가 대피했으리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거리에서 만난 사이죠(38)씨는 대피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이곳은 위험지역도 아니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일본 정부는 원전으로부터 반경 30㎞를 위험지역으로 권고하고 있다. 그는 "물론 불안하기는 하다. 그래도 서로를 격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간바레'(힘내라)를 함께 얘기하는 분위기"라고도 했다.

고리야마 시내의 민단 사무실을 찾았다. 민단에 따르면 대지진 직전엔 원전 반경 30㎞ 내에 71세대, 60㎞ 내에 80여 세대 등 우리 정부가 대피 권고 기준으로 삼은 80㎞ 내에만 모두 600여명의 교민이 살고 있었다. 지금도 남아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정 국장은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다만 그는 "여전히 도움을 요청하는 전화가 끊이지 않고 있다"고 했다. 아직 후쿠시마 안에 많은 교민이 있다는 방증이었다.

고리야마에 살고 있는 이재창씨 역시 가족 때문에 후쿠시마를 못 떠나고 있다. 그의 일본인 장모는 원전으로부터 20㎞ 지점에 살고 있다고 했다. "다 늙어서 고향을 떠나 뭐하겠냐"는 장모가 안 떠나니 이씨의 부인도 남기를 원했다. 그는 "이곳에서 태어났다. 고향이라고 생각하니 나도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 국장은 30㎞ 내 지역에도 교민이 살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그 역시 '위험 경계선' 안으로는 접근할 수가 없다. 사실상 통제가 돼 있고, "갈 용기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어제도 위험지역 안에 살고 있는 교민이 '두 달 된 아들이 아프니 도와달라'는 전화를 했다. 하지만 경계지역에서 만나 의료품만 전달해줄 수밖에 없었다"며 안타까워했다. "불안한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 "밖으로 피신하고 싶은데 기름이 없다"는 위험지역 내 교민들의 전화가 민단에 수시로 걸려오지만 해줄 수 있는 건 거의 없다.

겉으론 평온해 보이는 고리야마의 일본인들 역시 불안한 속내는 감추지 못했다. 주변지역 식료품에서 방사성 물질이 검출됐다는 소식이 속속 퍼지면서 더욱 그렇다. 다카하시 료쿄(49)씨는 "떠나려고 해도 사실은 여건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기름을 채우지 못한 그의 차는 주유소 앞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일본인이든 우리 교민이든 후쿠시마는 사실상 고립 지역이었다.

나카다 교죠(59)씨는 "방사능 때문에 후쿠시마는 복구가 뒷전으로 밀렸다"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수도와 전기가 일부 복구되기는 했지만 미야기(宮城)현 등과 비교하면 복구 속도가 형편없다고 불평했다. 그는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여도 다들 속으로 썩고 있다. 아마 원전 인근 도시는 모두 유령 도시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센다이로 돌아온 기자는 피폭 검사를 받았다. 의료진은 "다이죠부데스"(괜찮다)라고 짧게 말했다. 이은철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언론에 보도된 유출량을 감안하면 반경 50~60㎞ 지점은 아직까지는 안전하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고리야마에서 만났던 이재창씨의 말이 머리 속에 맴돌았다. "우리는 피폭 검사도 안 받았어요. 어디서 받는지도 몰라요."

고리야마(후쿠시마현)=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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