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사라졌다. 연락이 끊긴 지 열흘이 넘었지만 살아남은 자들은 넋이 나간 채로 실종자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일본 도호쿠(東北) 대지진 사망자 공식집계엔 잡히지 않았으니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사랑하는 이들의 행방을 쫓으며 각 현과 시에 마련된 수천의 대피소 순례를 이어가는 발길들과 마주쳤다. 쓰나미와 지진으로 인해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실종자는 현재 1만2,000명이 넘는다.
21일 오전 미야기(宮城)현 게센누마(氣仙沼)시 중학교 대피소 앞. 간노 노부유키(58)씨 부부는 인기척도 못 느꼈는지 종이쪽만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대피소 문 앞엔 실종자 신고명단과 대피소 수용명단이 잔뜩 붙어있었다.
간노씨는 "아내의 부모와 연락이 끊겼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니고 있지만 이제 힘이 떨어져 간다"고 말했다. 장인과 장모를 찾아 돌아다닌 것이 벌써 일주일째. 직장에도 가보고, 집에도 가봤지만 남은 것은 폐허뿐이었다. 그의 부인 에이코(40)씨는 "집은 기초만 남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한숨을 쉬었다.
게센누마에 마련된 대피소만 총 99곳, 수용인원은 2만86명에 달한다. 그나마 부부가 들른 곳은 이제 30여 곳에 불과하다. 60곳이 넘는 곳을 더 뒤져야 하지만 기름마저 떨어져 걸어 다녀야 할 처지다. 간노씨는 "(이와테현의) 모리오카에서 간신히 기름을 마련했는데 돌아갈 연료는 없어요. 혹시 기름이 있으면 줄 수 있겠냐"고 기자에게 고개를 숙였다. 기자 역시 매일 취재용 기름을 구하느라 악전고투하고 있다.
인근 게센누마체육관에서 만난 쓰가와라 요시히루(54)씨는 담담한 표정이었다. 그는 실종자 명단이 적힌 게시판 앞을 떠나지 않았다. 가끔 전화기를 들고 "아직 몰라, 미안해"라고 할 뿐, 웬만해선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죽마고우를 찾고 있었다. "쓰나미가 온다는 얘기를 듣고 산 쪽으로 대피를 해 무사했어요. 그 곳에서 어릴 적부터 친하게 지내던 친구의 집을 덮치는 쓰나미를 봤어요. 그것도 어마어마한 물결이 세 번이나 몰아쳤어요." 그날 이후 친구와 연락이 끊겼지만 자신도 주변을 정리하느라 이제야 찾아 나섰다고 했다. "친구에게 너무 미안합니다." 그는 대피소 세 곳을 들렀으니 이제 90곳을 더 가야 한다며 발걸음을 옮겼다.
다카하시 니카(38)씨는 매일 아침 폐허가 된 미나미산리쿠(南三陸)를 배회하고 있다. 11일 오후 게센누마에서 30㎞ 떨어진 이곳의 주민 1만7,000여명 중 1만여명, 반 이상은 지진과 쓰나미로 한 순간에 목숨을 잃었다. 자위대 등 일본 구조대가 이미 수색을 마쳐 생존자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다카하시씨는 개의치 않았다.
그는 쓰나미 직전 직장에 있던 남편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지 못한 게 한으로 남았다. "아마 피하라는 전화였을 텐데, 저는 이렇게 살았는데, 남편은 이제 보이지 않아요."
다카하시씨는 "아직도 퇴근한 남편이 같이 바닷가를 걷자고 할 것만 같은데 이제는 혼자 해변을 헤매고 있다"고 말을 흐렸다. 그는 마을 뒤쪽 산 중턱에 있는 마을에서 세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여전히 물은 나오지 않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지만 오히려 불편함은 없다고 했다.
"그래도 나는 살아 있으니까요. 혹시 취재를 하다가 남편 소식이나, 아니면 시신이라도 보게 되면 꼭 연락해 주세요." 그는 남편의 사진과 자신의 전화번호를 기자에게 꼭 쥐어주었다.
게센누마·미나미산리쿠(미야기현)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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