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령 혐의 기소유예, 증권거래법 위반 불기소, 선거법 위반 불기소, 기획입국 의혹 사실 아님.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의 'BBK 의혹'을 폭로한 에리카 김(47)씨 사건을 수사해 온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이동열)가 21일 김씨에 대한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김씨의 범죄 혐의는 어느 정도 인정되지만 처벌하지 않겠다'는 것이 요지다. 평소 공소 사실을 브리핑하는 데 주력했던 검찰이 이날은 김씨에게 면죄부를 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는 등 이례적인 풍경이 연출됐다.
김씨는 동생 경준(45ㆍ수감중)씨와 공모해 투자자문회사 옵셔널벤처스의 자금 319억원을 빼돌린 혐의를 받았다. 경준씨가 징역 8년을 선고받았을 정도로, 김씨가 기소돼 유죄로 인정될 경우 중형을 피할 수 없는 혐의였다. 검찰은 기소유예 처분을 내린 배경에 대해 "범죄사실이 인정되지만 가담 정도가 경미하고 동생이 중형을 선고받아 복역 중인 점을 감안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또 김씨가 미국에서 이미 형사처벌을 받은데다 거액의 민사소송에서 패소한 점도 고려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검찰이 위법 사실을 밝혔는데도 기소유예 처분을 내린 점은 논란거리다. 형사처벌 위험을 무릅쓰고 국내에 입국한 김씨가 결과적으로 자유의 몸이 됐기 때문이다. 검찰도 이 같은 점을 의식한 듯 "경준씨 부인 이보라씨도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이 정도면 충분히 기소유예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입국 초기부터 BBK 의혹에 대해 면죄부를 주기 위한 정해진 수순의 기획수사라는 설이 결국 사실로 판명됐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김씨가 옵셔널벤처스의 주가 조작에 가담한 혐의(증권거래법 위반)는 공소시효가 지난해 5월23일로 만료돼 '공소권 없음' 결정으로 불기소 처분했다. 2007년 11월 'BBK는 이명박 후보의 것'이라는 날조된 이면계약서를 갖고 기자회견을 열었던 혐의(공직선거법 위반)에 대해서도 2009년 6월2일로 공소시효가 끝나 공소권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했다.
검찰은 "기자회견 내용이 허위사실임을 알았지만 동생의 간곡한 부탁을 받았고, 대선 정국에서 이를 폭로하면 동생의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정치권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김씨의 진술 내용을 전했다. 하지만 공소시효 만료 시점 해석을 둘러싼 논란이 제기됐다. 검찰은 김씨의 미국 체류가 가택연금(6개월)과 보호관찰(3년) 처분에 따른 것으로 형사소송법상 수사를 피할 목적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해 공직선거법의 공소시효(6개월) 완성으로 무혐의 처분 결정했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검찰이 충분히 법리 검토를 했겠지만 결과적으로 무혐의 처분을 내리기 위해 몰두한 것 같다는 인상을 준다"고 말했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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