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이면 지금 이 시기야?" "상황이 다시 진정된 후에 가도 되지 않아?"
도쿄(東京)특파원 부임을 일주일 가량 앞둔 11일 일본 도호쿠(東北) 대지진에 이은 후쿠시마 원전 방사성물질 유출사건이 발생하자 친지와 지인들은 한결같이 일본행을 만류했다. 한국으로 오는 사람이 연일 공항을 가득 채우는 마당에 역으로 일본으로 향하는 데 대한 염려였다.
19일 일본으로 건너와서도 느낀 원전분위기 역시 당장 개선될 상황이 아니었다. 부임 첫날 여진을 경험했고, 연일 방사성에 오염된 수돗물과 채소가 뉴스에 등장하고 있다. 이미 상당수 외국계 회사 직원들이 자국으로 돌아가거나, 오사카 등 상대적으로 방사능 오염으로부터 안전한 지역으로 이동했다. 도쿄지국 사무실에 옆에 입주해 있는 영국 더 타임스 기자는 한국에서 갓 건너온 기자에게 "한국에서 보는 일본의 상황이 어떤지" "지금이라도 피난을 해야 하는 지" 등 동향을 파악하기에 분주하다.
도쿄내에서 한국인이 가장 많이 밀집한 신오쿠보(新大久保) 일대도 한국으로 돌아간 유학생들이 많아 평소보다 한산한 느낌이었다. 한국인 유학생을 종업원으로 고용하고 있는 한 음식점 관계자는 "학생들이 일언반구도 없이 한국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영업에 지장이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일본인들도 현재의 상황이 위험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는 보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평상심을 선택했다. 방사능의 위험보다는 이름없는 소영웅들의 나라를 구하기 위한 감동 스토리에 더욱 귀를 기울이고 있다. 방사능 오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호스를 잡은 자위대, 재난 현장에서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생존자를 구해내기 위해 무너진 건물더미를 파헤치는 소방대원들을 모습을 보며 위안을 얻고 있는 듯 했다.
도쿄 시내에서 만난 한 택시 기사는 "여전히 방사선에 대한 불안은 있지만 외국인들과는 달리 우리는 일본이 아니면 갈 곳이 없다"며 "한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는 그들이 이제 일본의 미래를 책임지는 중대한 역할을 하는 만큼, 그들을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여전히 진행중인 위험 속에서도 나라를 지키기 위한 영웅들에게 보내는 무한 신뢰에 기자 역시 머리가 숙연해졌다. 문득 이 신뢰에 몸을 맡겨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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