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은 보통 사람에게는 공포의 대상이다. 그러나 일부는 떼돈을 벌거나, 너무 과격해서 무시됐던 주장을 실현시키려고 혼돈을 이용한다. 루머를 퍼뜨려 혼돈과 공포를 확대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1815년 6월19일 영국 런던 증권거래소에서 로스차일드 가문이 주도한 '워털루 투기사건'은 대표적이다. 영국 증시는 패전에 무게를 두고 있었는데, 로스차일드 가문은 웰링턴 공작이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에 승리한 걸 하루 먼저 알아냈다. 또 영국 공채를 팔아 시장 투매를 부추기는 한편, 헐값(액면의 5%)에 나온 모든 공채를 대리인을 통해 사들였다. 다음날 승전 소식으로 폭등한 공채 대부분은 로스차일드 가문에게 넘어가 있었다. 단 이틀 작전으로 번 돈은 2억3,000만파운드인데, 지금 시세로 200조원이 넘는다.
10여년전의 'Y2K 문제'도 비슷하다. 2000년을 컴퓨터가 00년으로 인식해 오작동하면, 1조달러 규모의 대재앙이 올 것이라는 공포가 1999년 세계를 휩쓸었다. 각국 정부와 기업이 'Y2K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일부 글로벌 IT 업체에 엄청난 돈을 쏟아 부었다. 그러나 2000년 1월1일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IT업체는 "철저히 준비한 덕분"이라고 주장했으나, 대부분 보통 사람은 '속았다'는 느낌을 지우지 못했다.
이런 일은 1주일전에도 있었다. 15일 오전 11시 '후쿠시마 원전 2호기 폭발' 소식으로 한국과 중국 홍콩 증시가 동반 폭락했는데, 우리만 회복 시간이 더뎠다. '방사능 상륙' 루머가 겹쳤기 때문이다. 홍콩 증시는 정오부터 재반등했으나, 한국 시장은 오후 1시13분 기상청이 해명한 뒤에야 진정됐다. 경찰은 최초 유포자는 확인했으나, 증시에 루머를 확대 재생산시켜 주가 폭락 시간을 1시간이나 연장시킨 세력은 아직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일본 대재앙 이후 '국내 원전과 건축물의 지진 대비 안전성을 점검해야 한다'며 다양한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일부는 원자력발전소의 위험을 핵폭탄과 동일선상에 놓고 원전 정책의 폐기를, 또 일부는 공공 건물에 대한 대대적 보강공사와 아파트 재건축 기준 완화를 주장하고 있다.
일본의 끔찍한 영상에 제압돼 위험 회피성향이 극에 달한 탓일까. ▦원자력 발전의 1㎾ 생산비용(0.5센트)은 천연가스(4센트)의 8분의1 ▦원전의 필요 토지는 풍력발전의 60분의1 ▦공공 건축물 및 주요 시설물 보강 비용은 27조원이라는 것에 주목하는 사람은 드물다. '한반도도 안전하지 않다'는 주장에 묻혀, '일본과 중국에 둘러싸인 덕분에 6.5 이상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통계적 추정도 힘을 쓰지 못하는 분위기다.
선사시대에도 모래톱에서는 끝이 뾰족한 빗살무늬토기를, 산에 사는 사람은 바닥이 평평한 토기를 사용했다. 환경이 다르면 삶의 방식도 달라야 하기 때문이다. 일본 재앙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행동에 나서기 전에 일본과 우리 환경이 어떻게 다른지, 큰 돈 들여 재해에 대비하는 게 다른 현안보다 시급한지 냉정하게 판단해 봐야 한다.
조철환 경제부 차장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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