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일본이 미국 국채를 대거 팔아 치운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도호쿠(東北) 대지진 및 원전 피해 복구에 천문학적 규모의 비용 소요가 확실시되면서, 일본이 복구 자금 마련을 위해 미국 국채를 내다 팔 수도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은 "절대 그럴 일 없을 것"이라고 손사래 치지만, 만에 하나 현실화하면 국채 가격 폭락으로 이어지면서 글로벌 경제에 메가톤급 파장을 불러올 수 있다.
복구 비용 어디서 나오나
일본 지진 및 원전 사태에 따른 피해 규모는 우리 돈으로 수백 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은행은 21일 '일본 대지진 보고서'에서 재산 피해를 최소 1,230억달러(138조원), 최대 2,350억달러(264조원)로 추정했다.
관건은 이 막대한 비용을 어떻게 조달하느냐이다. 피해가 최소 범위에 머문다면 국채 발행 등 자체 소화가 가능하겠지만, 일본의 재정 악화가 극에 달한 상황에서 무작정 빚에만 매달릴 수도 없는 노릇. 중국에 이어 미국 국채를 두 번째로 많이 보유하고 있는 일본으로서는 미 국채 등 해외투자 자산을 매각하는 방법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관련, 한화증권은 21일 내놓은 보고서에서 "일본이 복구 비용 조달을 위해 최대 130조원(1,200억달러) 가량의 미국 국채를 매각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피해 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3% 이내에 머무른다면 일본 자체적으로 자금 조달이 가능하겠지만, 그 이상을 넘어가면 미 국채 등 해외 투자 자산 매각이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일본이 국채를 파는 시나리오가 현실화하면 가까스로 회복 국면에 접어든 글로벌 경제는 또 한 차례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 미 국채 가격 하락(금리 상승) → 중국 등 다른 국가 동반 매도 → 미 국채 가격 폭락(금리 폭등) →미국 소비 및 투자 침체 →글로벌 경제 동반 침체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늪이다.
국채 매각 가능성은 낮지만…
일본 당국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도, 미국은 최악의 시나리오는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확신하는 분위기다.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은 15일 상원 은행위원회에서 "일본이 피해 복구를 위해 미국 국채를 팔지는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실제로 일본 보험사 등 민간기업은 통제 불가능하다고 해도 일본 정부까지 미국 국채를 팔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일본 엔고(高)를 저지하기 위해 미국, 유럽 등 선진 7개국(G7)이 신속히 공조에 나선 것도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한 선제적 조치에 가깝다. 지진 발생 이후 미 국채가 안전자산으로 부각되며 금리가 하락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미 국채 등 해외 자산 매각이 엔화 가치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점도 일본 정부로서는 부담스러운 요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태가 추가로 악화된다면 장담할 수만은 없다. 박태근 한화증권 연구원은 "피해 규모가 계속 늘어날 경우 일본도 해외 투자자산을 그대로 들고 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