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전 인천 옹진군 백령도를 향해 물살을 가르는 여객선 뱃전에 파도가 연신 부딪혔다. 인천항연안여객터미널에서 출항한 지 약 4시간. 지난해 3월 26일 해군 초계함 천안함(1,200톤급)이 침몰한 그 바다가 선창 너머로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두 동강 난 천안함과 46명의 해군 용사를 삼킨 백령도의 바다는 무심하게 푸르고 고요했다.
오후 3시 백령도 북쪽 사항포구의 해병대 초소에 오르자 결연한 표정의 초병들이 전방을 응시하고 있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바다 너머 야트막한 산들은 북한 황해도 장산곶. 서해5도에 대한 북한의 도발은 휴전 뒤 반세기 넘게 가능성으로 상존했지만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으로 이제는 엄연한 현실이 됐다. 딱딱하게 굳은 해병대원들의 얼굴에서도 긴장감이 묻어났다. 임병인(21) 일병은 "각오하고 자원했기에 북한의 도발이 두렵지 않다"고 말했다.
백령도를 수호하는 해병6여단에게 지난 1년은 매일매일이 비상상황이었다. 외출이나 외박 등을 통제하지는 않지만 자발적으로 자제하는 분위기마저 조성됐다. 손상호 소령은 "천안함은 긴장이 느슨해지는 금요일 밤에 격침당했다"며 "긴장이 풀리면 틈이 생길 수 있어 영외 간부들도 웬만하면 술을 입에 대려고 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천안함 침몰 사건은 군은 물론 서해의 비경으로 꼽히는 백령도의 풍경을 180도 바꿔놓았다. 면사무소가 있는 진촌리는 섬의 중심이지만 점심시간에도 사람 그림자를 찾기 어려웠다. 아예 문을 열지 않은 식당과 상점들도 눈에 띄었다. 관광객들이 사라지자 민박집들까지 텅텅 비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마저 감돌았다. 진촌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한희석(51)씨는 "천안함 사건 이후로는 잘해야 하루에 한두 팀 받는 정도라 철수를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백령도 관광산업은 천안함과 함께 침몰했다. 인천항만공사에 따르면 2009년 인천~백령도 간 여객선 승객은 27만2,897명이었지만 지난해는 23만1,262명으로 15% 이상 줄었다. 군인 및 가족, 섬 주민 등이 고정승객인 점을 감안하면 관광객의 발길이 끊어진 탓이 크다. 이날 오전 출항한 여객선 데모크라시5호(정원 358명)도 승객은 190명 정도였고, 관광객은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선사 관계자는 "한 번 운항할 때마다 수백만원씩 적자가 난다"고 말했다. 백령도 최대 여행사인 백령여행사 최대훈(36) 팀장은 "지난해 매출이 2009년의 30% 수준으로 급감했는데 올해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불안 섞인 외부의 시선과는 반대로 섬 주민들은 담담하다 못해 의연해 보이기까지 했다. 한 50대 남성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육지에서 자꾸 불안하다고 떠드니까 화가 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섬 인구가 줄어들었을 것이란 예상도 빗나갔다. 올 2월 기준 백령도에 등록된 주민은 5,051명으로 천안함 사건 전인 지난해 2월의 4,953명보다 오히려 조금 늘었다. 김정섭 백령면장은 "주민들은 동요도 없고 항상 그렇듯 일상적으로 생활한다"고 말했다.
27일 섬 서쪽 연화리 야산에서는 '천안함 46용사 위령탑' 제막식이 열린다. 천안함이 침몰한 바다가 훤히 보이는 자리다. 이날 오후 찾은 위령탑은 마무리공사가 한창이었다. 높이 8.7m인 탑 아래에는 46용사 얼굴이 새겨진 동판으로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 붉디붉은 서해의 노을은 위령탑과 용사들의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백령도=김창훈 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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