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림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것도 못 본 체
손 저어 대답하면서,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
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보고 살다가,
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
길동무 되어서.
● 산 같은 혹을 진 단봉낙타도 선인장 같은 혹을 진 쌍봉낙타도 짐 앞에 무릎을 꿇지요. 짐 앞에 무릎 꿇는 일은 숭고하지요. 낙타는 길과 짐과 물맛을 알지요. 질기고 건조해 보이는 몸뚱이는 늘 슬픔에 젖어 있지요. ‘낙타표 고무신’ ‘낙타표 성냥’은 참 그럴듯한 상호들이었지요.
죽어 낙타가 되겠다니요. 낙타가 되어 어리석은 사람의 죽음 길 동행자가 되겠다니요.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 아, 그리하려면 가엾은 사람 모두를 살펴보아야할 텐데…. 낙타가 되어서도 시인 정신은 놓지 않겠다는 말 같군요. 길과 짐과 물맛을 아는 낙타로 환생하는 순간 이미 시인이 되는 것이겠지요.
시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