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개의 신용카드를 통해 돌려 막기로 근근이 버티던 신모(58)씨. 8, 9등급을 오가는 낮은 신용등급 탓에 은행은 물론 저축은행을 이용하기도 어려웠다. 결국 그가 찾은 곳은 2곳의 대부업체. 연 40%에 달하는 대출금리는 한번 연체가 되자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났다. 결국 채무불이행자의 낙인을 찍히고 신용회복위원회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었다. 신씨는 "설사 채무재조정에 성공한다 해도 낙인을 지우고 정상적인 신용 생활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2005년 4월, 정부는 신용불량자 제도를 폐지했다. 한 번 신용불량자 딱지가 붙으면 사회ㆍ경제적인 불이익이 너무 많고, 그 늪에서 헤어나기가 쉽지 않다는 이유였다.
그로부터 5년 여. 획일적인 신용불량자 낙인은 사라졌지만 그 자리를 대신한 신용등급의 족쇄는 여전히 무겁다. 저신용 탈출을 위한 사다리의 복원이 시급해 보인다.
저신용의 굴레
개인신용평가회사인 NICE신용평가정보가 보유하고 있는 개인 신용등급 정보 가운데 2006년말의 등급과 2010년말의 등급이 함께 남아 있는 이들은 총 3,493만여명. 이들의 신용등급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추적해 본 결과, 비교적 짧지 않은 기간(4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등급 전이율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최하위 등급인 10등급의 경우 아직까지 10등급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들이 15.5%. 이들은 4년전이나 지금이나, 어떤 금융기관에서도 돈을 빌릴 수 없는, 신용 피라미드의 맨 밑바닥을 헤매는 신세다.
간신히 10등급을 탈피했다고 해도, 저신용 굴레를 벗어나긴 쉽지 않았다. 9등급(29.8%) 8등급(29.7%) 7등급(19.2%) 등으로 옮겨가는데 그쳤을 뿐, 정상적인 금융 거래가 가능한 6등급 이상의 신용등급으로 올라선 이들은 5.8%에 불과했다.
9등급, 8등급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9등급의 경우 신용등급이 1, 2계단 상승(69%)하는데 그친 이들이 대부분. 제자리 걸음을 하거나(12%), 오히려 10등급으로 미끄러진 경우(3.0%)도 적지 않았다. 8등급 역시 7등급 이하 저신용자에 머문 이들의 비중이 84.9%에 달했다. 실제로 신용회복위원회나 미소금융을 찾는 사람들 중에는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저신용자가 정상신용자가 되기란 너무도 힘들다"고 말했다.
저신용자 중에선 그나마 가장 높은 7등급은 그래도 희망을 엿볼 수 있는 편이었다. 저신용 그룹에 머물러 있는 경우(42.3%)보다 정상 등급으로 올라선 경우(57.7%)가 더 많았다.
고신용ㆍ저신용자 간 높은 장벽
저신용자가 고신용자로 올라가기도 쉽지 않지만, 고신용자의 저신용 추락도 흔치는 않았다. 4년 전 1등급 중 지금 7등급 이하로 곤두박질친 이들은 100명 중 1명꼴(1.3%)에 그쳤고, 2등급과 3등급 역시 저신용자로의 추락비율은 2.0%, 2.9%에 불과했다. 저신용-고신용이 사실상 고착화되고 있다는 의미다.
물론 예외적이긴 하지만 지옥에서 천당으로, 반대로 천당에서 지옥으로 간 이들도 있다. 10등급에서 1등급으로 수직상승한 이들이 339명, 0.03%였다. 거꾸로 1등급에서 10등급으로 급전직하한 이들도 5,816명, 0.1%에 달했다.
물론 신용등급의 변동이 큰 것이 꼭 좋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신용등급이 안정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 등급의 유의성을 설명하는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개인신용평가회사 코리아크레딧뷰로(KCB) 관계자는 "등급이 수시로 출렁인다면 등급의 신뢰성이 그만큼 저하될 수밖에 없다"며 "신용이라는 것은 오랜 기간 축적되는 것이고 단기간 내에 회복이 어려운 점이 있다"고 말했다.
전반적으로 볼 때 등급 자체는 소폭이나마 개선된 편이다. 4년 전에 비해 1등급 비중은 5.3%에서 9.5%로, 2등급 역시 10.8%에서 15.1%로 늘어났다. 반면 10등급 비중은 3.1%에서 1.7%로 줄었다. 정선동 NICE신용평가정보 CB기획실장은 "신용등급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고 카드 연체 등이 당시보다 많이 줄어든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이영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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