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 소액대출로 생활비를 마련했던 조모(26)씨. 대학졸업 후 취직에도 실패하면서 생활비는 물론 대출이자 마련도 쉽지 않았다. 그의 신용등급은 9등급. 제도권 금융회사 대출이 불가능해지면서 어쩔 수 없이 대부업체까지 찾게 됐다.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로 버텼지만 역부족. 작년 7월 결국 채무불이행자로 추락했고, 더 이상 헤어나기 힘든 10등급으로 주저 앉았다. 10등급은 은행은 말할 것도 없고 제2금융권, 혹은 대부업체조차 거절하는 말 그대로 '신용 루저''금융 식물상태'란 얘기다.
'신용의 사다리'가 영 부실하다. 4년 전 최하위 신용등급(10등급)이었던 개인 10명 중 9명 이상은 지금도 저신용자(7등급 이하)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단 저신용자로 추락하면 어지간해서는 탈출이 쉽지 않다는 얘기다.
저축이나 교육 등을 통한 신분상승, 즉 계층이동의 사다리는 이미 붕괴된 상황. 대출 카드 등 기본적 금융거래를 유지할 수 있는 신용의 사다리까지 무너질 경우 사회적 양극화는 더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높다. *관련기사 3면
23일 본보가 개인신용평가 회사인 NICE신용평가정보와 함께 지난 4년간 개인들의 신용등급의 변화를 추적해 본 결과, 2006년말 10등급이었던 108만6,551명 가운데 94.2%(102만3,147명)는 작년 말까지도 7등급 이하 저신용자 그룹에 속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4년전이나 지금이나 계속 밑바닥(10등급)에 머물고 있는 이들도 15.5%(16만8,366명)나 됐다.
4년 전, 그리고 지금까지도 저신용자(7~10등급)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비율은 67.8%였다. 3명 중 2명은 시간이 흘러도 계속 저신용자란 얘기다. 그래도 7등급의 경우 저신용자 탈출 비율(57.7%)이 꽤 높았지만, 8등급(23.5%)과 9등급(16%)는 저신용 탈출 통로가 매우 비좁았다.
반면 고신용자들은 좀처럼 저신용 나락으로 추락하지 않았다. 4년 전 1등급자(184만3,365명) 중 작년 말에도 1등급을 유지하고 있는 이들은 60.3%(111만2,151명). 3등급 이내의 고신용을 유지한 이들까지 합하면 90.0%(165만9,485명)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신용등급이 너무 자주 변해도 곤란하지만, 적어도 본인 노력에 따라 등급 상승의 기회는 충분히 보장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전효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한번 추락한 신용등급이 도저히 헤어나기 힘든 족쇄가 돼서는 곤란하다"며 "등급 산정의 체계를 개선하고 서민금융을 활성화해서 패자부활의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강아름기자 s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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