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를 들을 순 없지만 시선은 한 순간도 탁구공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상대를 마주하는 자세는 어딘가 엉성해 보이지만 신기하게도 어떤 서브든 척척 받아 넘겼다.
청각장애나 지적장애를 가진 아이들로 구성된 에바다학교 탁구부원 이야기다. 이 학교 탁구선수들은 이달 13일 끝난 2011년도 경기도 초등학교 탁구대회에서 남자단체전 3위와 저학년부(1~2학년) 준우승을 차지했다. 장애학생들 간의 승부가 아닌 비장애인들과 정정당당하게 겨뤄 일궈낸 성적이다.
"악! 악!" 18일 오후 경기 평택시 진위면 에바다학교 본관 뒤편 2층짜리 건물에서는 짧은 기합소리가 끊임없이 울렸다. 2층으로 올라가자 초등학생 10명과 고등학생 3명으로 이뤄진 단출한 탁구부가 26일 강원 홍천군에서 열리는 전국대회를 앞두고 훈련에 여념이 없었다. 최용중(36) 코치는 탁구대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며 수화로 지시를 했다.
남자단체전 3위의 주역인 전경우(12ㆍ초6)군은 고등학생 형을 상대로 쉬지 않고 맹공을 퍼부었다. 강렬한 드라이브에는 비장애 학생들과의 대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자신감이 묻어 나오는 듯 했다.
청각장애를 가진 전군은 "3등을 해서 너무 좋다. 올림픽에 나가 꼭 금메달을 따고 싶다"고 수화로 표현했다. 옆에 있던 백민흠(10ㆍ초4)군은 "나는 국가대표가 꿈"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지적장애를 앓는 백군은 지난 대회 3~4학년부 개인단식 본선에 진출해 가능성을 보여줬다. 최 코치는 "장애인 관련 대회에서는 이미 우리 아이들을 대적할 선수들이 거의 없다"며 "비장애인들과도 실력으로 맞설 수 있는 수준에 올라왔다"고 설명했다.
대부분의 스포츠에서 청각은 절대적이다. 탁구도 라켓과 공이 맞는 소리로 공의 구질과 스핀의 정도를 가늠하기 때문에 소리는 매우 중요하다. 그나마 탁구는 1대 1로 마주보고 해 다른 종목에 비해서는 나은 편이다. 에바다 선수들은 소리 대신 전적으로 시각에 의존하고, 부족한 부분은 순발력으로 메워나간다. 당연히 한계 극복을 위한 반복훈련이 필수적이다.
에바다 탁구부의 1차 목표는 전국대회 제패다. 장애에 대한 인식개선을 위해 일반대회에 참가하고 있지만 이제는 우승도 허황된 꿈은 아니다. 3위 안에 들고 있어 좀 더 노력하면 닿을 수 있는 사정권에 들어왔다. 그 다음 목표는 비장애인들과 경쟁해 태극마크를 다는 것이다.
권오일(49) 에바다학교 교장은 "굉장히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불가능은 아니다"고 단언했다. 그는 "우리 선수들에게 탁구는 꿈을 이루는 수단"이라며 "언젠가 세계 스포츠사를 새로 쓰는 순간이 올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글ㆍ사진=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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