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 안산에 있는 반도체 부품업체 A사의 김모 대표는 며칠 전부터 전화기를 붙들고 살다시피 하고 있다. 일본에서 플라스틱 부품을 수입ㆍ가공해 한 대기업에 납품하고 있는데, 대지진 이후 현지 바이어와 연락이 끊겼기 때문. 원재료를 수입하지 못할 경우 사실상 공장 가동을 멈춰야 할 형편이지만, 당장 수입선을 바꿀 수도 없어 애만 태우고 있다.
# 한국지엠은 20일 일본 대지진 여파로 당분간 일부 공장에서 주말특근과 잔업을 하지 않기로 했다. 이에 따라 부평과 군산, 창원공장 중 부평과 군산공장은 이번 한 주 동안 주ㆍ야간 각 2시간 잔업 및 주말특근이 중단된다.
회사 관계자는"일본 지진사태가 얼마나 갈 지 알 수 없어 현재 재고로 한 달 이상 생산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고 말했다. 한국지엠은 구형 라세티와 쉐보레 스파크(마티즈)에 들어가는 자동변속기를 전량 일본의 아이신사와 자트코사로부터 공급받고 있다
일본 도호쿠(東北) 대지진에 따른 국내 산업계 피해가 점점 커지고 있다. 대일 의존도가 큰 부품ㆍ소재 및 장비 수입 업체들이 직접적인 피해 영향권에 들어섰다. 특히 자동차ㆍ휴대폰ㆍ석유화학 등 주요 산업분야의 부품 재고량이 최대 3개월 치에 불과하다.
부품ㆍ소재 수입업체 직접 타격
20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광학기기와 자동차ㆍ선박용 철판, 반도체 제조용 장비 등 일부 품목의 경우 우리 기업의 수입에 차질이 빚어지기 시작했다. 부품ㆍ소재분야는 지난해 기준으로 전체 수입물량 중 대일의존도가 25%를 넘는데, 현지 생산 감소와 물류 마비가 곧바로 우리에게도 영향이 미친 것이다.
대표적인 분야는 반도체 제조용 장비다. 상당수 국내 중소기업들이 동경일렉트론에서 부품을 공급받고 있는데, 이 업체가 대지진의 직접 피해지역인 이와테(岩手)현에 있기 때문. 거래선 변경도 쉽지 않아 원재료 공급 차질에 따른 국내 기업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다.
LCD 제조용 장비 역시 지난해 수입액이 전년도에 비해 143.6% 늘어났을 만큼 대일 의존도가 높다. 이 분야 역시 일본 현지의 물류 차질에 따른 납기 지연으로 생산에 차질을 빚는 기업들이 생겨났다.
이날까지 우리 기업 270여곳이 주문량 감소와 수출 중단, 발주 연기 등으로 수백억원대의 피해를 입었다고 중소기업청과 중소기업중앙회에 신고했다. 특히 상시근로자 100명 미만 업체가 80% 이상이어서 영세기업일수록 타격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산업분야 재고량 1~3개월치 불과
지식경제부가 민주당 김진표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자동차 부품의 국내 재고물량은 1~3개월치에 불과하다. 석유화학 부품 역시 재고량이 3개월치 정도 남아 있고, 휴대폰 부품은 1개월 뒤면 재고량이 바닥날 상황이다.
이들 분야 외에도 고무ㆍ플라스틱 부품의 경우 대일 수입의존도 평균치(25.2%)보다 훨씬 높은 73.4%나 되고, 비금속광물(56.7%)과 화학제품(29.5%), 1차금속(27.5%)의 상황도 비슷하다.
지금 당장이야 부품 수급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해도 일본 현지의 생산 차질이 길어지거나 항만과 도로, 항공 등의 물류 정상화가 늦어질 경우 우리 산업계의 피해는 점점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르노삼성과 한국지엠이 당분간 주말특근과 평일잔업을 중단키로 한 것은 당장이라도 피해가 현실화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삼성전자 관계자는"현재 일본 이외에 대만을 비롯한 다른 지역에서 부품 수입량을 늘리는 문제를 논의중"이라고 말했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허재경기자 ric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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