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나 사이
시를 버리고
흐르는 구름을 끼워 놓는다
눈부신 양들의 행렬을
시는 때로 욕망의 무게를 지니지만
구름은 만개한 공허
흩어지고 말면 그뿐인
나와 나 사이
날카로운 터럭을 밀어 버린다
앵무새 능구렁이 삼류 배우를 밀어 버린다
이끼가 낄 때까지 입을 열지 않는
검푸른 석벽(石壁)도 치워 버린다
이제 무엇이 흐르는지
무엇이 새로 태어나는지
해 지고 해 뜨는 지평선 같은
나와 나 사이
하늘 아래 민둥산
해무(海霧)를 먹고 자라는
거북등 같은 섬과 섬 사이
빈 목선을 타고 밀려오는
오, 싱싱한 불립문자(不立文字)들
● 문정희의 '늙은 꽃', '나와 나 사이', '물 만드는 여자' 중 어떤 시를 택할까. 내 안의 나들이 '내 속에는 내가 너무 많아'란 노래 가사를 떠올리며 이틀을 싸웠지요. 정말, 내 속에는 내가 너무 많은 것 같기도 하다가, 그 많은 나를 합한 것이 나란 생각이 들기도 하지요. 또 문득문득 만나는 낯선 나가 진짜 나 같기도 하고요. 어떻든 내 속에 사는 나들은 서로 석벽처럼 침묵하기도 하고 앵무새나 삼류 배우처럼 깊이 없는 노래로 다투기도 하지요.
'나와 나 사이' 그 좁고도 넓은 계곡을 정처 없이 떠돌며 흘러가는 게 우리 삶인가요. 나와 나 사이에 구름을 끼우고 석벽을 치워, 문자로 표현할 수 없는 싱싱한 마음 만나는 시인이 한없이 부럽네요. 그렇지만 나와 나 사이의 끝없는 갈등 또한 삶의 쏠쏠한 재미 아닐까요. '빈 목선'을 나무 관(棺)이라 오독해(?) 읽어보니, 시가 더 재미있네요.
여러분들도 시 읽은 기념으로 오늘 나와 나 사이에 맑은 구름 한 점 끼워 보시지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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